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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여행/산길따라~

성치산~성봉~신동봉 ~무자치골(충남 금산)........2010.7/18

by 마루금 2010. 7. 20.

산행날씨 : 흐림과 맑음 반복 / 간헐적으로 바람이 불어서 쾌적한 산행이었슴.
산행코스 : 용덕고개~성치산~전망대~공터삼거리~성봉 전위봉(648봉)~성봉~신동봉~무자치골12폭포~모치마을
산행거리 : 도상 11Km
산행시간 : 느긋하게 6시간 (휴식 30분, 물놀이 1시간 포함해서~)
산악회 따라 ~


주말께 전국적으로 많은 비가 내렸다. 이 비는 토요일 밤 늦게 잠들기 전까지도 끊이지 않았다. 산행계획을 잡은 일요일의 일기가 어찌 변할지는 예측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늘 그렇듯 변죽스런 장마철 날씨는 믿을 수 없는 법, 혹시 모를 변화에 작은 희망을 걸었다. 일요일 아침 일찍 나섰다. 집을 나설 때는 비가 내릴 듯 우중충하더니~ 날이 점점 밝아지면서 구름이 높이를 올리고, 하늘도 열리고 있었다. 산행지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올라서 하늘이 맑았다. 작은 희망이 통했던 기분 좋은 날이다.  오늘의 최종 목적지는 폭포가 있는 곳~ 여름 산행은 역시 물 많은 곳을 최고의 산행지로 꼽을 수 밖에 없다. 전북과 충남의 도계를 따라 구석탱이 오지 능선에 올랐다가 금산의 비경 십이폭포로 내려서는 것이다, 오전은 산행으로 능선에서 땀을 진탕 빼고, 오후 더울 때쯤이면 계곡으로 내려와 시원한 물에 몸을 푹 담궈 피서를 즐긴다는 이야기다.

 

* 지도에 표기된 648봉을 본문 내용에서는 '성봉 전위봉'으로 기록했슴 ~

 

< 용덕고개 >

635번 지방도가 분기되는 흑암삼거리에서 진안쪽 운일암 반일암 방향의 55번 지방도를 따라가면 용덕고개에 도착한다. 고개턱에는 등나무 쉼터가 있고, 작은 돌탑, 인삼이 그려진 돌비석, 금산관광안내판 등이 설치돼 있다. 행정지명은 충청남도 금산군 남이면 구석리와 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 용덕리, 충청남도와 전라북도의 도계가 되는 지점이다.

 

용덕고개 ~

 <들머리 ~ >

산행은 용덕고개에서 시작한다. 고갯마루에서 등나무 쉼터 뒤로 나있는 능선으로 올라붙는다. 들머리 좌측 아래 논이 있으며, 우측 능선의 오름길에 안내리본이 잔뜩 매달려 들머리 찿기가 쉽다.        

 

등나무 쉼터 ~

 

들머리 능선 ~ 

 

가파르게 오르면서 묘 몇 기를 지나면 기분 좋은 오솔길로 바뀐다  

 

성치산이 가까워지면 가벼운 암릉구간이 나타난다. 위를 우회하는 길도 있으므로 적성에 맞게 등로를 선택해서 오르면 된다. 암릉구간을 지나다가 진행방향 우측에 조금 비켜나있는 독립봉을 볼 수 있다. 이 봉우리가 성치산이다. 성치산은 주능선에서 떨어져있으므로 날씨가 흐려 봉우리를 못보고 지나거나, 독도를 게을리하다가 놓치는 수가 더러 있다.   

  

 

 

 

< 독도 주의 ~ > 

암릉구간이 끝나면 삼거리 갈림길이 나온다. 여기서 좌측 오름길은 주능선이고, 우측 사면길은 성치산으로 가는 길이다. 성치산 정상은 주능선에서 우측으로 70여미터 비켜나 있는 독립봉이다. 올랐던 길로 다시 되돌아 나와야 한다.

 

성치산 정상 ~

 

성치산(城峙山 해발 670.4m)
금남정맥에서 갈라져 나온 성치지맥의 주봉이다. 충남 금산과 전북 진안의 도계 능선에서 진안 쪽으로 70여미터 벗어난 봉우리다. 정상은 헬기장이고, 막힘이 없어 조망이 좋으며, 주변 명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허름한 정상석이 자연스럽다.

 

 

 

 

대둔산을 줌인 ~

 

구름 덮힌 운장산(좌측) 방면 ~

 

진악산 방면 ~

 

성치산 정상에서 휴식을 마치고, 진입했던 길로 다시 되돌아나와 주능선으로 붙었다. 이후 암릉구간을 지나는데 전망이 훤히 트여 조망이 너무 좋다. 쉬기 좋은 바위전망대 서너 곳을 거쳐서 간다. 

 

바위전망대 ~

 

 

명덕산과 진안 주천면 용두동 마을 ~  

 

구봉산과 북두봉 ~ 

 

암릉구간을 내려서면 걷기 좋은 숲 터널이 시작되며, 성봉까지 이런 상태가 계속된다. 중간에 두 번의 갈림길이 나오는데 독도에 유의해야 할 지점들이다. 성봉까지 이정표가 전혀 없으므로 혼돈하기 쉽다.

 

 

< 독도 주의 >

넓은 공터 삼거리가 나온다. 이곳 T 갈림에서 90도 좌틀하면 성봉 방향이다. 가파른 봉우리를 올라서 성봉 전위봉(648봉)에 도착하면 삼거리가 또 나온다. 이곳 T 갈림길에서 좌측은 무자치골로 내려가는 방향이고, 성봉은 90도 우틀이다. 여기서 봉우리 하나를 더 넘어가야 성봉이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공터 삼거리를 지나고나서부터는 가장 높은 봉우리만 찿아 오르면 성봉에 도착한다는 것이다.

  

 

성봉 (城峰, 해발 648m)
용덕고개에서 성봉까지만 충남과 전북의 도계인 동시에 성치지맥이다. 이후부터는 충남 금산 땅만 밟게 되며, 성치지맥과도 이별이다. 성봉에서 신동봉 방향이 금산 남일면, 남이면 분계가 된다. 성봉 정상의 Y 갈림길에서 무자치골은 좌측길이다.

 

 

성봉에서 안부로 내려서면 비로소 이 산에 설치된 첫 이정표를 만난다. 주능선에서 여기까지는 독도에 유의해야 한다. 사람들이 많이 다녀서 길은 넓직하고 양호하지만 이정표가 없기때문에 방향을 놓치고 헤메는경우가 있다. 일행들은 신동봉을 올랐다가 무자치골로 빠져서 내려가기로 하고 안부에서 직진으로 올랐다.

 

 

첫 이정표가 설치된 안부 ~

 

안부에서 무명봉을 넘어가면 평탄한 길로 이어진다. 바위가 많은 신동봉이 정면으로 솟아 보이고, 우측 아래는 신동저수지가 내려다 보인다. 좌측은 숲이 우거진 골이 깊은 무자치골 상류지점으로서 진초록이 깊게 물든 푸르디 푸른 골짜기가 신비감을 더해준다. 

  

좌측은 신동봉,  우측은 무명봉 ~ 

 

신동 저수지 ~                   

 

신동봉 (605m)

경사가 있어 꽤 숨차게 올라야 한다. 올라서면 조망이 좋아 주변 명산이 한 눈에 시원스레 들어온다. 운장산, 마이산, 덕유산, 서대산, 진악산, 대둔산, 계룡산, 백암산 등 굵직한 명산들의 눈요기가 펼쳐진다.

 

신동봉 정상의 이정표 ~

 

 

  

 

 

 

 

 

 

신동봉에서 90도 좌틀하면 무자치골로 빠지는 길이다. 경사가 가팔라 조심해서 내려서야한다. 낙석도 있다.

 

 

 

 

신동봉에서 내려오면 이정표를 만나는데 여기서 무자치골 본류와 합류한다. 이후 아래로 내려서면 갖가지 모양의 폭포가 즐비하게 나타난다. 규모는 작지만 자연이 만들어낸 폭포전시장이다.

 

무자치골에서 만나는 이정표 ~

 

 

 

연이어 나타나는 폭포를 바라보고 내려서노라면 전혀 지루하지가 않다. 넓은 암반에 펼쳐져서 흘러 떨어지는 와폭이 있는가 하면, 바위에 패여진 홈통을 따라 물이 모아져서 내리는 폭포도 있다. 맨 아랫쪽은 높은 낭떠러지 위에서 하얀 비단 폭을 풀어 내리듯 곧장 떨어지는 20여미터의 직폭이다. 이 폭포를 십이폭포라 부르기도 하는데 정확한 이름이 아니다. 십이폭포라 함은 무자치골에 자리잡고 있는 폭포 전체를 통틀어서 일컫는 이름이다.

 

 

 

 

< 무자치골의 전설 >
덩치 큰 장수가 살고 있었다. 커다란 바위를 지고 나르다가 이 골짜기에서 칡덩굴에 걸려 넘어져 바위를 놓쳤다. 화가 난 장수는 칡덩굴을 모조리 뽑아버렸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이 산에는 칡덩굴을 찿아 볼 수가 없다고 한다. 큰 폭포 위쪽에 두드리면 소리가 난다는 덩더꿍바위가 있다. 이 덩더꿍바위 위쪽으로는 장수가 놓친 바위가 아직도 있다고 전해진다. 장수가 손가락으로 바위에 글씨를 새겼다는데 지금 남아 있는 글씨들이라고 한다. 

 

 

무자치골 정자쉼터 ~

 

 

<십이폭포골 또는 무자치골>

무자치골 또는 십이폭포골이라 불리고 있다. 뱀이 많아 무자치라는 이름을 얻었는데, 무자치는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물뱀의 한 종류다. 아쉬운 것은 가물 때면 이 멋진 폭포가 실폭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폭포 속 ~

 

< 폭포 미끄럼틀 > 

밧줄을 잡고 꼭대기로 올라가서 줄을 놓으면 바위 홈통을 따라서 쏜살같이 미끄러져 내려간다. 이내 풍덩 소리가 나면 용왕님을 한 번 뵙고나서야 머리가 물 밖으로 나온다. 여기 한 번 맛들이면 용왕님 만나는 건 누워 떡먹기가 된다.    

 

물 미끄럼틀 ~

 

폭포 바위면 여러 곳에 한시(韓詩)가 새겨져 있다. 각기 그 서체와 뜻이 다른데, 한 사람에 의해 기록된 것으로 보아지지는 않는다. 그 옛날 우연히 이곳에 들렀다가 비경에 감탄한나머지 느낌을 글로 표현해서 바위면에다 새겨 두었을 것이다. 맨 아래쪽 폭포 아래, 낙하(落河)와 의하(疑河)란 글씨를 볼 수 있다. 의하(疑河)를 '폭포수의 모습이 은하수가 쏟아지는 것으로 의심된다'라고 해석하고 있다. 나는 낙하와 의하를 합쳐 '높은데서 물이 떨어지는데 쏟아져 내리는 폭포수가 괴이하게 보인다'라 표현하고 싶다. 폭포 위 암반에는 죽포동천(竹浦洞川)이라 적혀있다. '대나무처럼 쏟아져 내리는 폭포의 물가 골짜기'란 뜻으로 해석된다. 위 사진처럼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줄기가 길게 뻗어서 마치 대나무를 연상케 한다.   

 

 

 

그 외에도 곳곳에 글귀가 남아 있는데 풀이하면 다음과 같다. 

 

청뢰(晴雷) ..... '하늘에 구름이 없는데 천둥치는 소리가 난다'  

풍패(風佩) ..... '탄복할만한 경치가 골짜기를 두르고 있다'
명설(鳴雪) ..... '눈처럼 희고 맑은 물줄기가 소리내어 흐른다'
운옥(雲玉) ..... '폭포수가 일궈내는 구름이 마치 구슬같다.

학룡(鶴龍), 침용(琛龍), 침용(沈龍) ..... 첫 글자 필체가 명확하지 않아 해석이 애매하다. 학과 용이 사는 곳,  용이 사는 신성스러운 곳, 깊은 곳에서 용이 머무는 곳 등으로 각기 해석이 분분하다. 

산봉(山鋒), 산종(山鐘), (山鷄), 산구(山鵴) .... 이 내용 역시 두 번째 글자 필체가 명확치 않아서 해석이 애매한 부분이다. 뾰쪽히 솟은 산, 폭포소리가 우렁차 산을 울리는 종과 같다, 산새, 꿩이나 산비둘기, 부엉이 등으로 해석된다. 그리고 12곡에 대한 시를 설명한 내용이 있는데, 글씨가 마모돼 해석이 난해한 상태다. 이 글을 기록한 선인들의 의중을 알아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후세들은 다만 남겨진 기록을 한자의 뜻을 빌어 풀이해서 선인들이 남긴 오묘한 마음을 읽어내고자 하는 데 흥미를 둘 뿐이다.  

 

 

 

 

 

 

 

직탕폭포를 떠나서 구석리 모치마을까지는 약 1.6Km, 계류를 옆에 끼고 도로를 따라 논과 인삼밭을 지나면 봉황천에 도착한다. 봉황천을 가로지르는 돌다리는 모두 54개, 마지막 물놀이가 또한번 짓굳게 여기서 펼쳐진다. 

 

봉황천을 가로지는 54개의 돌다리 ~ 

 

모치마을 봉황천 ~

 

 

 

 

시원하게 다녀왔다. 충남의 끝이자 전북의 끝이 만나는 구석탱이 오지, 서로 돈 쓰기 싫은지, 충남에서 미루고 전북에서 미뤄 산행이정표 하나 없던 곳, 그래도 그게 좋다. 천연의 모습이 그대로 살아 있다는 것, 자연을 아낀다는 건 어쩌면 이런 무관심이 오히려 약이 될는지도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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