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산행*여행/발길따라~

장안사(부산) .... 2008.05.04

by 마루금 2008. 5. 7.

 

 

장안사로 가던 길에 장안초등학교를 잠시 들렀다. 일행 중에서 이 학교 설립자의 손자가 있어 어릴적에 보았다는 기념비를 확인하러갔다. 희미한 기억으로 기념비 위치를 찿지 못하여 거의 포기했다가 한쪽 모퉁이에 숨어있던 것을 겨우 발견했다. 다른 자리로 옮겨진 비석에서 옥개석은 옛 것인데 비신은 무슨 연유가 있었던지 교체된 것으로 보여 균형이 어긋난 느낌이다.

 

 

장안초교의 기념비

 

장안사 입구

 

장안사는 불광산 기슭에 있는 고찰이다.  

*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장안리 398번지 소재 * 부산광역시지정 기념물 제37호 

 

673년(문무왕 13)에 원효대사가 창건,

쌍계사(雙溪寺)라 했다가 애장왕(800~809)이 다녀간 후로 '장안사'라 개칭하였다고 한다.

 

 

고려시대의 역사는 분명치 않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으로 불탄 것을 1638년(인조 16) 태의대사가 중건하였다고 한다. 1654년(효종 5) 원정, 효능, 충묵 스님이 대웅전을 중건하였다. 1948년 각현(覺玄)이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내에는 대웅전, 명부전, 응진전, 산신각 등이 있다. 대웅전은 1654년 중건된 것으로 안에는 후불탱화, 신중탱화가 있다. 정면 3칸, 측면 3칸이며, 처마는 겹처마, 지붕은 팔작 지붕, 공포는 다포(多包)양식이다. 1975년에 단청을 다시 하였다. 건물은 높이가 비교적 높고 부재가 견실하여 이 사찰의 중심 건물로서의 웅장한 기상을 잘 나타내고 있다.

 

 

절 입구에는 5기의 부도가 있고, 정원에는 톡특한 모양의 단풍나무가 있다.

 

<극낙전 와불 복장에 부처님 진신사리 봉안>

사리는 인도 고대의 말인 범어 사리라(Sarira)를 음역한 것으로 신골(身骨) 영골(靈骨) 정골(淨骨)을 의미한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후 다비를 하니 타고 남은 뼈가 오색구슬 같았고, 그 빛이 옥색 같았고, 맑고 깨끗했으며, 또 견고하였다. 그래서 이름을 사리라 하였다. 금강명경에 의하면 '사리는 오랜 세월 계(戒) 정(定) 혜(蕙)를 닦는 노력의 향기로 이루어진 결정체다'라고 하였다. 이렇듯 사리는 참된 수행의 결과로 생겨지는 것이다.

 

본 장안사에서도 불기 2535년 부처님 진신사리 7과를 봉정받아 3층석탑에 봉안 하였다. 이 진신사리는 불기 2523년 혜경선사께서 태국에서 모시고 오신 것이다. 그리고 불기 2545년 사부대중의 지대한 원력으로 부처님 진신사리 3과를 봉정받아 극락전 와불 부처님 복장에 봉안 하였다. 이 진신사리는 미얀마 마웅매이 절 원로 의장이신 고승 우뚜리야 사야도우스님이 장산스님께 봉정한 것을 큰 인연으로 장안사에 봉안하게 된 것을 경건 합장합니다. 

장안사 안내문 중에서 

 

 

천년이 넘었다는 청동 불상

 

 

 

부모님께 잘못하면 부처님께 참회 하지만 부처님께 잘못하면 어디에 참회할꼬 ..  

장안사 비문 중에서

 

  

한국불교 선종의 초석이 되어온 달마대사의 입상좌상이 모셔진 곳 천년고찰 장안사 명산의 정기와 옛 선승들의 참 수행처인 장안사는 화엄의 세계에서 깨달음으로 향해 법등을 밝히는 청정 수행 도량입니다. 

장안사 안내판 중에서

 

 

 

 

부처님께서 입을 열면 부처가 죽고부처님께서 입을 다믈면 중생이 죽는다.

징안사 비문 중에서

 

 

  

 

 

허공이 높으메 해와 달이 밝고
땅이 두터우메 풀과 나무는 자라는도다.
새가 노래하메 뜻을 알기 어렵고
꽃이 웃으메 소리 듣기 어렵도다.
              

 

장안사 안내문 중에서 .....


 

 

 

728x90
728x9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