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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여행/추억따라~

박달산 ~

by 마루금 2008. 3. 28.

1988년 2월28일

청명한 날씨

인천 구시민회관~충북 괴산 느릅재 : 35인승 관광버스

산행코스 : 느릅재~1봉~2봉~박달산 정상~안부~방곡리 계곡~방곡리

산행인원 : 30명쯤 


동생이 장비를 구입하러 자주 다니던 등산용품점이 있었다. 거기서 운영하는 산악회가 있었는데, 박달산 산행에서 서브리더를 맡아달라는 것이었다. 집결지에서 관광버스가 정해진 시간에 출발했고, 곧 차내에서 등반대장 인사말과 산행지의 간략한 소개가 있었다.

 

등반대장을 빼고 모두 처음 대하는 사람들이어서 맨 뒷좌석으로 자리를 잡고, 조용히 있었다. 단체라그런지 좌석 중간쯤에는 몇몇이 소줏잔을 기울이며, 미처 산행도 하기 전에 술을 마셔대는 것이었다. 등반대장이 그런 행위를 보고 가만히 있다는 것도 의아스러웠고, 그 일행의 행동이 내 상식으론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산행출발지에서 이미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사람도 있었다. 등반대장이 그 사람에게 버스에서 쉴 것을 권유해서 처음엔 그러겠다더니, 잠시 후 마음이 변했던지 올라 가겠다고 억지를 부렸다. 하는 수 없이 등반대장은 동생과 내게 맨 후미를 봐 달라고 부탁하고는 일행을 데리고, 선두로 먼저 떠났다.

 

산행이 시작되고 10분쯤 지나자 앞선 일행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단 3명만 남았다. 비틀거리는 사람은 그 와중에 동생과 나에게 한 마디 덧붙인다. "빨리 앞사람 따라 가세요. 오늘 처음 온 것같은데 조난당하면 어떡할려고 맨 뒤에 섰습니까 "

 

최근에 개척된 코스라 길 흔적이 희미했다. 풀밭이 끝나고, 숲으로 들어서자 경사는 점점 심해져갔다. 내가 앞에서서 독도를 했고, 동생은 비틀거리는 사람 뒤에서 따라왔다.

 

첫 봉우리를 오르는데만 몇 번을 쉬었는지 모를 정도로 산행은 느리게 진행되었다. 비틀거리던 사람은 땀을 비 오듯 흘리며, 연신 물타령으로 동생과 내가 준비했던 식수를 모두 축냈다. 점심 때가 지나자 어느 덧 술이 깼는지 배가 고프다고 아우성이라 비스켓이랑 쵸코렛 등 간식으로 허기를 면하게 했다. 

 

그 사람은 자신의 베낭을 차에다 두고 온 것이다. 그 덕으로 동생과 나는 물도 제대로 마시지 못했고, 간식거리도 모두 그 사람 차지가 되었다. 동생과 내게는 너무 느리게 진행 된 산행으로 운동량이 적어서 땀 흘릴 새도 없었고, 배도 그리 고프지 않아 참을만 했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정상에 도착했다. 제일 기뻐한 사람은 산 아래에서 비틀거리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보이지도 않는 길을 어찌 그리 잘 찿아 오르느냐며 연신 고맙다는 말과 함께 그 때부터 더욱 친숙하게 다가왔다.

 

하산길은 비교적 수월했다. 비틀거리던 사람도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왔고, 내림길이라 시간이 오래 걸릴 이유가 없었다.산행종착지인 버스주차장에 도착하자 주차장 한켠의 뜰에서 앞선 일행들의 런치타임이 한창 무르익고 있었다.

 

일행들은 마지막으로 나타난 우리들 3명을 바라보며, 수고했다는 인사를 보내왔다. 비틀거렸던 사람은 잽사게 일행을 한 바퀴 돌더니 맛있는 음식을 잔뜩 골라와서 동생과 내게 건네주었다. 그리고 그 사람은 대하는 사람마다 자신을 구해준 생명의 은인이라고 동생과 나를 연거푸 소개하면서 돌아다녔다.

 

산행안내문 하나 남았다. 이것마저 없었으면 기억 속에서 지워졌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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