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산행*여행/산길따라~

추억어란 월출산.....1983

by 마루금 2005. 5. 25.

83년 1월 중순경 가장 추울 때 (날짜는 정확히 기억 못함)

토요일 밤 11시30분에 서울역에서 만나기로했다.

 

이경규(회사 후배) 나 그리고 막내동생 3명이 월출산에 가기로하고, 

지금은 모르겠지만 그때는 서울역 광장에 가면 광주요! 광주 하면서 손님을 모으는 관광버스 기사들이 있었다.

나는 가끔 이런 버스를 이용해서 원정등반을 하기도 했다.

 

12시쯤되자 그 관광버스엔 빈자리 하나 없이 손님들로 꽉 들어 찼고,

이어 호남 고속도로를 달려 광주역에 도착하니 새벽3시 반이다.

 

30분쯤 걸어서 시외버스 터미날에 도착했다.

대합실에 들어가 15분쯤 기다리니 돈통을 들고 덜거뎍 거리면서 여자 매표원들이 우루루 몰려 들어선다.

기숙사에서 막 나오는거 같은데 모두들 꽤좨좨한 모습이다.

새벽4시30분 첫 버스를 타고 나주를 거쳐 영암에 도착하니 5시30분이다. 광주에서 한 시간 걸렸다.

택시를 타고 도갑사로 직행해서 가는 도중에 눈발이 날리기 시작한다. 어둠 속에서 눈이 전면 유리창을 때리는 것이 꼭 뚫고 들어 오는것 같은 느낌이다.

 

도갑사에 도착. 둘러보니 우리뿐이다.

깜깜해서 사찰 내부는 구경도 못하고 랜턴으로 등산로 입구를 찿아서 바로 출발했다.

 

조금오르자 물이 겨우 흐르는 냇물이 나온다.
서울서 여기까지 오는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해 배도 고프고 해서 라면을 끓여먹자고 제의했더니 둘은 조금 더 올라 가쟎다. 그 냇가를 지나고 나서 물은 전혀 없없다.

온통 이름 모르는 가시나무와 산죽(대나무) 밭을 가르며 깔딱고개를 헥헥거리고 넘는다.
어둠이 걷히기 시작했고, 눈발은 점점 거세게 몰아치고 있었다.

모든게 하얗게 변한다.

능선에 거의 도달하자 억새로 유명한 미왕재가 보인다. 온 세상은 그림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바람불어 만들어진 설화가 나무가지에 마다 맺혀 장관을 연출한다, 사진으로만 보던 얼음설화를 실제로 본건 그때가 처음이다.

잠시 쉬어 뒤를 보니 수석 전시장이 시야에 들어온다..이름하여 도갑산.
능선에 펼쳐진 바위의 조화가 눈과 어울려 빗어낸 주변 광경이 너무나 멋져서 감탄사만 연발이다... 금강산이 저럴까 !!

숨돌리는 사이 추위가 엄습해 온다. 기온이 급강하 하고 세찬 바람은 살을 깎아 내는 듯하다.
맛바람 불어대면 숨조차 쉬기 힘들다. 들이 쉴때마다 코구멍에 얼음반지가 생겨 따끔거린다.

추위를 이기기위해 옷을 있는대로 덧 껴입고, 준비해간 두건으로 얼굴을 씌우니 모양은 영락없는 강도다.
장갑도 두겹씩이나 끼고 나니 행동이 영~ 부자연스러운게 아니다.

아이젠을 차고 걷지만 길이 여간 미끄러운게 아니고, 바위를 넘을땐 손도 이따금씩 이용하는데 그때마다 장갑이 바위에 쩍~ 달라 붙는다. 아마 맨손이면 손바닥 살점이 떨어져 나갈듯 싶다.

온통 눈천지에 안개인지 구름인지 사방을 분간하기가 힘들게 시야를 가린다.
길도 없어졌다.꼭 조난 당할것 같은 느낌이다. 감각적으로 방향을 인식하며 봉우리를 하나 넘고 두개넘고, 계속 전진을 해 나갔다.

배가 고파온다. 물이없어 해먹을 방법이 없다. 냇가에서 요기를 했어야 했는데 후회가 되지만 어쩔수 없었다.
먹을거라곤 라면3개와 귤6개뿐, 귤을 각자 두개씩 나누었다.

이경규 그친구는 단숨에 두개를 해치운다. 무척이나 배가 고팠던 모양이다.
동생은 쉬면서 하나먹고, 걸어 가면서 나머지 하나를 먹었다.
나는 먹지않고 윈드쟈켓 호주머니에 고이 넣어두었다. 혹시 모를 위기상황을 생각해서..

우리는 걷는동안 계속해서 눈을 끍어 줏어 먹었다. 조금이라도 배 고픔을 면해 보려고..
눈이 그렇게 맛이 좋을줄 몰랐다...꿀맛이다.

몇개의 봉우리를 넘어 왔는지 한참을 온것 같다. 배도 고프고 지치고 이제 지겨워지기까지 한다.
저 봉우리 넘으면 하산길인가 하고 넘으면 더 큰 봉우리가 그 너머에서 기다리고 있다.
그럴 때마다 힘이 쫘~악 빠진다.

이경규 그놈 이젠 도저히 못가겠다고 퍼진다. 배고프고 힘빠지니 손끝하나 움직이기 조차 싫다고 한다.
할 수 없이 내 호주머니에 있던 귤을 꺼내어 그놈에게 주었다. 두 개 다 흔적도 안남기고 혼자서 꿀꺽이다. 쫌 야비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놈을 끌고 갈려면은... 그놈 힘이 났는지 미안해서 하는 말인지 못가겠다던 놈이 쉬다말고 출발하자고 먼저 설쳐댄다.

가는 도중에 길이 이상해 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구정봉까지 아직 도착하지 않은 것 같은데 길이 아래로 향하고 있었다. 아무리 둘러봐도 위로 오르는 길이 없어졌다. 하는 수 없이 옆으로 횡단해 나갔다. 반시간을 그렇게 헤멨다.
조금 지나자 눈이 서서히 그치고, 시야가 트이기 시작했다. 다행이다.

우리가 길을 잘못 들어 섰다는 것이 확인 되었고, 한참 멀리 구정봉이 보였다.
잠시 후 천황봉에서 넘어오는 열여 명 가량의 무리들이 보였다.
우리는 다시 구정봉을 향해 오른다. 엉뚱한 길로 들어서는 바람에 한시간 가량 손해 본것 같다.

이윽고 구정봉에 오르니 천황 봉이 보인다. 하늘이 서서히 열리면서 해가 날려고 한다. 바람도 줄고 기온도 올라가 따뜻해 지고 있었다. 산행은 훨씬 수월해졌다. 가끔 뒤를 돌아 보니 넘어 온 길이 까마득하다.

드디어 정상에 도착...
표석에는 천황봉이라고 적혀있다. 월출산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장관이다. 과연 금강산 다운 면모를 지니고 있다.
전후좌우에 병풍처럼 늘어선 수많은 봉우리들.... 늠름한 자태가 손에 잡힐듯 다가선다.

정상에서 내려보니 어렵사리 지나온 길이 빤히 바라보인다. 조금전만 해도 방향을 도저히 분간할수 없었던 저곳...
조난이라도 당할까봐 얼마나 마음 졸였던가! 아찔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젠 내려 가는 일만 남았다. 하산길은 통천문~ 광암터~ 바람폭포를 지나서 장군봉 형제봉 중턱의 릿지코스를 택했다. 바람골 건너편의 사자능선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봉우리 마다 눈을 가득 이고서 저마다 서로 위용을 자랑하는 듯 싶다. 하산하는 도중 내내 그곳에서내 눈을 떼지 못했다.

천황사 냇가에 도착하니 3시다. 라면 3개로 배를 채우고 공원 주차장을 빠져 나왔다. 이렇게 해서 월출산 산행을 마쳤다.
기상악화로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악조건에서 눈에 묻힌 길을 찿으려 애쓰고, 추위와 배고픔과 싸우며, 조난되지않을까 하는 불안한 마음을 가득 않고 산행했던 그순간.. 그리고 하산할때는 분이 터지도록 화창하게 개인 날씨가...
절대로 잊지 못하고 마음으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마루금......

728x90
728x9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