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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여행/발길따라~

대한성공회 인천내동교회 .... 2024.03.07

by 마루금 2024. 3. 7.

 

 

 

인천내동교회(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51호/ 2002년 지정)는 동인천역과 자유공원 중간쯤에 있다. 1890년 9월 29일 인천으로 들어온 영국 해군 종군신부 고요한(Charles John Corfe) 주교에 의해 한국 최초의 성공회 성당이 건축되었다. 그러나 원 건물은 6·25 전쟁 때 소실되고, 현재 건물은 원래 성 누가병원이 있던 장소인 인천광역시 중구 내동에 다시 세운 것으로 1956년 6월 완공되었다. 초대 성당 건물은 1891년 9월 30일 준공, 1902년 러시아 영사관, 1904년~1956까지 성공회 신학원으로 운영되었다. 

 

 

 

 

 

 

 

 

 

현재 건물 형태는 지붕의 목조 트러스를 제외하고, 외벽과 주요 부재는 화강암으로 견고하게 쌓아 올린 중세풍의 석조이나 한국의 전통적인 목구조 처마 양식을 가미하였으며, 창호 및 벽체 부분의 처리가 뛰어나다.

 

 

 

 

 

 

 

 

 

 

 

 

 

 

고요한( Charles John Corfe) 주교

영국 해군 종군 신부로서 선교 동역자 6명과 함께 1890년 9월 29일 인천항에 첫발을 내디뎌 선교활동을 시작하였으며, 인천에 제물포에 대지를 마련, 한국의 첫 성당 건축에 착공했다. 이렇게 하여 건축된 성공회 성당인 제물포 송학동 성당은 1891년 9월 30일 성미카엘성당으로 축성되었다.

 

남득시(Eli Barr Landis) 박사

1891년 8월 송학동에 순한국식 병원 건축을 시작했다. 건물은 ‘ㄷ’ 자 형으로 배치, 트인 쪽을 동쪽으로 한국인 마을을 바라보게 했고, 대문은 남쪽, 그 양쪽으로 환자대기실, 약방, 진찰실, 랜디스 박사의 숙소, 창고가 있었다. 서쪽은 일꾼방, 부엌, 식료품저장소, 연료창고, 목욕탕, 북쪽은 모두 온돌마루로 된 병실들이 있었다. 랜디스 박사는 병원이 완공된 1891년 10월에 입주, 성누가 침례일에 개원했기 때문에 ‘성누가병원(St. Lukes Hospital)’으로 명명했다. 이후 성누가병원이라는 이름이 한국인에게는 별 의미가 없다며, “Hospital of Joy in Good Deeds”을 번역, ‘낙선시의원’(樂善施醫院)이라는 간판을 달았다. 한국인의 정서와 문화를 남달리 잘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랜디스 박사는 장질부사에 걸려 1898년 4월 16일 3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연구를 위하여 수집하고, 집필한 책 약 300여 권은 연세대학교 도서관의 ‘랜디스문고’에 보관되어 한국문화연구의 귀중한 자료로서 이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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