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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여행/발길따라~

영호루(안동) .... 2016.08.04

by 마루금 2016. 8. 13.

 

 

숲에 가려 전망이 좋지 못한 게 조금 아쉽다. 안동시가지에서 낙동강 영호대교를 건너가면 얕은 야산에 위치해 있다. 입구에 신승박시비가 있고, 총혼탑이 부근에 있어 함께 둘러볼 수 있다. 

 

 

항일투사 김지섭선생 기념비 ~

 

< 추강 김지섭선생 >  

1884년 경북 안동 출생
1910년 금산지방법원 서기겸 통역으로 재직하던 선생은 일제에 의해 국권이 상실되자 공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내려가 조국독립 방안을 강구하다가
1920년 만주로 망명
1922년 의열단에 가입
1923년 조선총독부를 파괴하려던 계획이 사전에 탄로나자 단신 니주바시 투척사건을 감행하기로 결심 
1924년 1월3일 일제의 침략상을 국제적으로 널리 알리고 한국의 독립의지를 세계만방에 호소하고자 일본 왕궁과 가장 가까운 다리인 니주바시(二重橋)에 폭탄 3개를 투척한 뒤 체포됨.

1928년 44세의 나이로 옥중 순국
1995년 국가보훈처에서 선생을 '1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

 

 

안동 영호루 ~
경남 밀양 영남루(嶺南樓), 진주 촉석루(矗石樓), 전북 남원 광한루(廣寒樓)와 함께 한강 이남의 대표적인 누각으로 불리어져 왔다. 기록이 없어 창건에 관한 내용은 불분명하지만 천년여 동안 그 이름이 전통의 웅부안동(雄府安東)과 함께 하고 있다. <영가지(永嘉誌)>에 의하면 고려 공민왕 10년에 홍건적의 난이 일어나 왕이 이 곳 복주(福州)로 백관을 거느리고 피난하였다고 한다. 왕은 피난중의 적적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자주 남문밖에 우뚝 서 있는 영호루를 찾았고, 때로는 누각 밑 강물에 배를 띄우기도 하였으며, 모래사장에서 활쏘기경기도 하였다고 한다. 난리가 평정되어 환궁한 왕은 복주를 대도호부(大都護府)로 승격시키고 영호루를 잊지 못하여 친필로  映湖樓 현판을 보내 누각에 달게 하였다고 한다.

 

 

< 영호루 중건 내용 >   
1547년(명종 2년) .... 홍수로 누각 유실, 떠내려간 현판만 김해에서 발견,

1552년 .... 안동부사 안한준(安漢俊)이 누각 중건

1775년(영조 51년) ... 홍수로 재유실 /  부사 신맹빈(申孟彬)이 중건

1792년(정조 15년) ... 홍수로 재유실

1802년 .... 부산 이집두(李集斗)가 중건

1934년 .... 갑술년 홍수로 재유실, 안동~대구간 도로 연결을 위한 안동교 공사에 종사하던 사람들이 누위 휴식하는 사이 갑자기 물이 닥쳐 많은 사람과 함께 떠내려 갔다 함. 이튼날 구담(九潭)부근에서 사람들은 무사히 구했으나 누각은 유실되고, 현판만 수개월 후 선산군 구미리 부근 강물 속에서 다시 찾았다고 함. 
1969년 12월 .... 안동시군민이 '영호루 중건 추진 위원회'를 조직, 정하동(亭下洞)에 1,085평의 대지 확보

1970년 11월 .... 현재의 영호루를 중건

 

 

 

박정희 대통령 친필 ~

 

공민왕 친필 ~ 

 

▼ 내부에는 갑술년 홍수 때 유실됐다가 회수한 현액과 새로 복원한 현액이 걸려있다. 시판은 12점,  제영 1점, 현판 2점이다.

 

 

영호루중건기념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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