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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여행/발길따라~

전라우수영(해남) .... 2012.09.02

by 마루금 2012. 9. 8.

 

 

진도대교에서 해남쪽에 있다. 광장과 주차장, 상가시설이 있고, 입장료를 받는다. 울돌목인 진도대교 아랫쪽은 입장료와 상관 없이 출입할 수 있는 곳이다.  

 

 

 

 

 

전라우수영 ~
고려말 우왕3년(1337년) 무안 당곶포에 수군처치사영(水軍處置史營)이 설치된 뒤 세종 22년(1440) 해남 황원곶(현우수영)에 이를 이설, 세조 11년(1465)에 수군절도사영으로 승격 개편되었으며, 성종10년(1479) 순천 내례포에 전라좌도수군절도사영이 설치된 후 전라우도수군절도사영이라 칭하게 되었다. 우수영성의 전체 영역은 원문내 남부 길이 10리, 동서 너비 5리 였으며, 영성은 석축 둘레 3,843척, 높이 11척, 여첩 607개, 호지 3개소가 있었다. 영내의 민호는 620호, 수군 장졸의 병력은 1,085명을 보유하였다.

 

본영의 관할구역은 시대에 따라 변화가 있었으나, 임란 이후부터 한말에 이르기까지 대체로 나주, 영광, 함평, 무안, 영암, 해남, 진도 등 7관읍을 속읍으로, 금갑도, 남도포, 어란진, 고금도, 신지도, 마도진, 목포진, 이진진, 다경포, 법성포, 임치진, 지도진, 주도진, 금모포, 고군산, 선산진, 흑산도, 청산진, 가리포 등 19진을 속진으로 관리하였다. 선조 30년(1597) 정유재란 때, 본영의 수사 김억추는 통제사 이순신과 더불어 명량대첩에서 승리를 거두었는데, 명량은 본영으로부터 불과 5리도 떨어져 있지않은 급조류의 해협으로 천험의 관방을 이룬 곳이다. 우수영성은 토성과 석성의 혼합성으로 사각형과 원형의 중간 형태인 부정형성을 이루고 있다.     

 

 

명량해협과 명량대첩 ~
진도군 군내면 녹전리와 해남군 문내면 선두리 사이의 좁은 물목으로 바다가 운다 하여 명량(鳴粱), 울두목, 울돌목이라고 불린다. 너비 325m, 가장 깊은 곳의 수심 20m, 유속은 11.6노트(약22km/h)에 달한다. 하루 두 차례 밀물과 썰물이 한길 넘게 턱이 지고 거품이 일며 용솟음 치는 특이한 형세는 
보는 이에게 무서움마저 들게 한다. 소리 또한 요란하여 20리 밖에서도 들린디고 전한다. 정유재란 때 조선 전선의 10배가 훨씬 넘는 왜선을 격파하여 대승을 거둔 명량대첩은 이곳의 자연조건을 잘 이용한 전략의 승리였다. 당시 일본 수군은 명량해협을 통해 서해로 진출하려고 했으나 1597년(선조 30) 9월16일 상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 수군은 유인전술과 이 물목을 최대한 이용하여 마침내 대규모의 일본 수군을 물리쳤다. 한 기록에는 물목에 철쇄를 미리 설치하여 적선을 전복시켜다고도 한다. 이쨌든 이 해전의 승리는 정유재란의 대세가 조선군에 유리하게 전개되도록 하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하였다. 이러한 사실들은 세셰 해전사에서 길이 빛날 것이다. 

 

 

 

 

 

 

 

 

 

 

  

 

 

 

 

 

진도 아리랑의 노래말 ~

 

아리 아리랑 스리 스리랑 아리리가 났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문경 새재는 웬 고갠가
구부야 구부구부가
눈물이로다
아리 아리랑 스리 스리랑 아리리가 났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약산 동대 진달래꽃은
한 송이만
피어도 모두 따라 피네
아리 아리랑 스리 스리랑 아리리가 났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나 돌아간다 내가
돌아간다
떨떨거리고 내가 돌아간다
아리 아리랑 스리 스리랑 아리리가 났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치어다보느냐
만학은 천봉
내려굽어보니 백사지로구나
아리 아리랑 스리 스리랑 아리리가 났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만경창파
둥둥 뜬 저 배야
저기 잠깐 닻 주거라 말 물어 보자
아리 아리랑 스리 스리랑 아리리가 났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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