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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여행/발길따라~

청룡사(안성) .... 2008.11.09

by 마루금 2008. 11. 12.

 

 

금북정맥 첫 구간을 끝내고 하산하면서 청룡사를 들렀다. 안성의 명산인 칠장산과 서운산이 금북정맥에 걸친 산이어서 자연스럽게 올랐고, 고찰 칠장사와 청룡사까지 하루에 두루 살폈으니 소득이 많았던 날이다. 아쉽다면 바우덕이를 놓친 것이 ... 

 

 

청룡사 입구의 마을 어느 토담집... 한쪽이 허물어졌지만 나름대로 소담스런 멋이 풍겨서 ....   

 

청룡사 사적비(靑龍寺事蹟碑)

1985년 6월28일, 시도유형문화재 124호로 지정. 청룡사 사적비는 청룡사의 중수를 기념하기 위해 조선 경종 원년(1721)에 세운 것이다. 받침돌 위에 비신을 세우고 옥개석을 얹은 형태로 옥개석 네 귀퉁이에 용이 머리를 대고 서려 있는 모습이 특징이다. 청룡사 입구 도로상에 놓인 이 비는 차량의 반환점에 위치해 있어서 보존상태가 썩 좋은 편이 아니며, 비문의 글씨도 마모가 심하다.

 

청룡사 사적비 

 

사적비를 지나서 나타나는 돌탑.... 

 

청룡사 ...

고려 원종 6년(1265)에 명본국사가 세워 대장암(大藏庵)이라 불렀던 곳이다. 공민왕 13년(1364) 나옹화상이 크게 넓히면서 청룡사라 이름을 고쳤는데, 청룡이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광경을 보고 지었다는 전설이 있다. 사찰 건축물로 대웅전, 관음전, 관음청향각, 명부전 등이 있고, 대웅전 앞에 명본국사가 세웠다는 삼층석탑 등이 보존되어 있다. 법당에 1674년(조선 현종 15)에 만든 5톤 청동종이 있고, 괘불이 있어 대웅전 앞에 괘불을 걸 돌지주까지 마련해 놓았다.

 

인평대군(麟平大君)의 원찰(願刹)이었다는 청룡사는 1900년대부터 등장한 남사당패의 근거지이기도 했다. 이들은 청룡사에서 겨울을 지낸 뒤 봄부터 가을까지 청룡사에서 준 신표를 들고 안성장터를 비롯해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연희를 팔며, 생활했다. 지금도 건너편에 남사당마을이 남아 있다. 주변 관광지로 바우덕이 묘, 청룡저수지, 서운산, 미리내성지, 죽주산성, 칠장산, 칠장사, 고삼저수지, 안성장, 삼일운동기념탑, 등이 있다.

 

청룡사 입구 .. 

 

청룡사 대웅전 (靑龍寺大雄殿)

1985년 1월 8일에 보물 824호 지정. 대웅전 안에는 조선 헌종 15년(1674)에 만든 범종이 보관되어 있다. 조선 후기의 건축 기법과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어서 건축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한다.

 

입구에서 정면으로 바로 보이는 대웅전이 웅장하다.  

 

사찰 경내 층층나무가 오랜 세월이 지났음을 말해준다 .... 

 

요사채

 

 

청룡사 괘불 석주와 삼층석탑...

 

 

서운산 자락 배경의 처마끝 풍경소리가 그리운 계절 ...  

 

대웅전 내부의 석가모니불, 문수보살, 보현보살... 

 

대웅전 내부의 조선 헌종 15년(1674)에 만들었다는 범종 ..  

 

청룡사 금동관음보살좌상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70호, 원래 관음전에 봉안되었던 것으로  조선 경종 2년(1722)에 만들어진 복장유물이 발견되어  그보다 훨씬 이전에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전체적으로 단아한 느낌을 주는 보살상으로서 양감도 비교적 풍부하고 고려시대의 조각을 계승하고 있으나 신체는 다소 장대해진 느낌이 든다.

 

고개를 앞으로 숙이고 길상좌를 한 이 보살은 적당히 살아있는 얼굴에 사실적인 이목구비,이 세상에 비추는 광명을 나타내는 미간의 토톰한 백호(白豪), 둥글둥글한 머리카락을 높게 묶은 후 양 어깨 위로 다섯 가닥씩 흘러내리게 한 표현, 번뇌, 업, 고통을 상징하는 목의 삼도(三道) 등에서 단정하면서도 위엄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손 모양은 계율을 지키고 열심히 수행한 사람이 태어날 수 있는 극락세계를 의미하는 중품중생인(中品中生印)을 하고 있다.

 

옷은 두 어깨에서 한 번 접혀진 채로 자연스럽게 흘러내리고 있고, 배 부분에는 보살의 목이나 가슴 등에 늘어뜨리는 장신구의 하나인 영락이 표현되어 있다. 청동으로 주조된 점, 화려한 영락, 보발 표현방식, 얼굴과 신체의 사실성및 단아한 분위기 등에서 고려 후기 보살양식을 계승하고 있지만 고개를 앞으로 숙인 자세, 단순화된 구슬 장식 등에서 조선 초기인 15세기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금동관음보살상 (사진은 빌린 것임) 

 

 

영산회괘불탱 (사진은 빌린 것임) 

 

 

감로탱 (사진은 빌린 것임)

 

명부전 ... 

 

산신각 ... 

 

나무의 자연스런 모습을 그대로 이용한 대웅전의 기둥 ...

  

청룡사 삼층석탑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59호, 이 탑은 높이가 2.38m로 평면 사각형의 단층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올렸다. 부분적으로 파손된 지대석 위에 3단의 받침이 기단을 받치고 있다.  기단은 4장의 돌로 만들어졌는데 각 면에 모서리기둥(우주)과 버팀기둥 (탱주)이 새겨져 있다. 탑몸들과 기둥들은 각각 다른 돌로 만들어졌으며 탐몸들의 각 면에는 모서리기둥이 조각되어 있다. 1층 탑신에 비해 2층과 3층 탑신의 높이가 급격히 낮아져 비례가 흐트러져 보인다.  지붕들은 경사가 급하다가 전각에 이르러  살짝 반전되었으며  합각선이 뚜렸하다. 상륜부는 현재 남아있지 않고 석탑에도 훼손이 있다. 

 

청룡사 삼층석탑 ... 

 

절간의 메주...

 

범종각 현판의 벌집, 살생은 금물이라서 .....

 

청룡사 동종

보물 제 11-4호, 검은 빛이 감도는 큰 종으로 원래는 1674년에 종루의 종으로 만든 것이다. 현재도 매일 행해지는 예불의식 때마다 종을 치고 있으며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종의 모양을 보면 소리를 좌우하는 음통(音筒)이 맨 위에 있고, 그 옆에는 용 모양의 종을 거는 고리(용뉴)가 있다. 그 아래에 배가 볼록한 포탄 모양의 종신이 있다.  종신의 표면을 보면 위쪽에는 '육자대명왕진언'(六字大明王眞言)과 '파지옥진언'(破地獄眞言)을 1줄씩 새기고, 그 아래 사다리꼴로 된 4개의 유곽(乳廓)이 있고, 그 사이에는 연꽃 가지를 든 4구의 보살입상과 4개의 위패(位牌)가  한 쌍으로 배치되어 있다. 이같은 구성법은 17세기 전반기에 정통 승장계(僧匠系) 장인들이 주로 썼던 방식이다. 이 종은 숙종 대에 활동했던 승장  사인(思印)이 30대 중반에  지준(智俊), 태행(太行), 도겸(道兼), 청윤(靑允)과 함께 만든  통일신라 때부터 보이는 전통 계열의 종이다.  현재 남아 있는 조선 후기 종들 가운데서도  우수한 작품으로  17세기 범종의 연구와 승장들의 사회 및 사원경제 구조 등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청룡사 동종 ... 

 

청룡사 뒷뜰 장독대의 가을풍경 ...

 

청룡사 사찰 밖 가을풍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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