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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여행/발길따라~

묘적사 .... 2007.01.28

by 마루금 2007. 1. 30.

 

 

 

백봉산(栢峰山) 하산길에 묘적사를 돌아보았다. 남양주 와부읍 월문리에 숨어있는 사찰이다. 한자로는 묘할 묘(妙), 고요할 적(寂), 절 사(寺) 자다. 사찰 이름의 뜻 그대로 건축물이 기묘하게 생긴 데다가 주변의 정경이 한적하기 이를 데 없이 적막하다. 

 

 

 

 

  

 

연혁(沿革) 

신라 문무왕(재위 661-680) 때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말이 내려오지만 지금은 이를 뒷받침 할만한 아무런 기록이나 유물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래서 신중동국여지승람 권 11 양주목(楊州牧) 불우조(佛宇條) 기록 가운데의 '묘적사재묘적산유김수온기(妙寂寺在妙寂山有金守溫記)'라는 간접적인 기록을 통하여서만 조선시대 세조(世祖) 당시에 이 절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따름이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절에 대한 기록 가운데  '묘적산산신각중건기'에 따르면 1895년(고종32년)에 규오법사(圭旿法師)가 산신각을 중건했다고 한다. 그 뒤 1969년의 화재로 대웅전. 산신각 등이 소실되었다가 1971년 자신(慈信)스님에 의해 대웅전과 요사가 중건되었다. 그리고 다시 1976년에 대웅전, 관음전, 마하선살이 중건되었고, 1979년과 1984년에는 나한전과 산신각이 각각 완성되었다.

 

이 절에 내려오는 말로는 묘적사는 국왕 직속의 비밀기구가 있었던 곳이라고 한다. 거기에 따르면 이곳에 일종의 왕실산하 비밀요원을 훈련시키기 위한 사찰을 짓고, 선발된 인원을 승려로 출가시켜 승려교육과 아울러 고도의 군사훈련을 받도록 했다는 것이다.  

 

 

 

 

 

 

 

 

 

 

 

 

묘적사 팔각칠층석탑

향토유적 제1호 
소재지: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월문리 222

 

묘적사(妙寂寺) 대웅전 앞 우측에 위치한 8각의 7층 석탑으로서 본래는 사원 앞에 위치해 있었으나 1971년 현 위치로 옮겼다고 한다. 묘적산(妙寂山)에 있는 이 사찰은 신라 문무왕(661~690) 때 개창되었다고 하나 확실한 고증은 얻을 수 없다. 동국여지승람 묘적사조에 김수온(金守溫)의 기록에 의하면 조선 세조 당시에 이미 존재해 있었던 것임이 분명하다.

 

고종 32년(1895년)에 산신각이 건립되었으며, 1969년에 화재를 만나 소실, 현 대웅전과 요사물은 1971년 새로 중건된 것이다. 탑은 8각의 지대석 위에 1석으로 조성된 8각 2층의 기을 이루고, 하대중석의 면석과 하대 및 상대갑석에는 가는구멍 2구의 안상이 있으며, 기단은 앙복연화문(仰複連花文)을 상하에 새긴 불좌형식(佛座形式)이다.

 

능각(稜角)마다 우주(隅柱)를 새겼고, 옥개는 탑신과 1석으로 조성했는데, 상승함에 따라 체감율이 낮아서 비교적 안정감을 준다. 처마의 끝은 반전하여 곡선을 보이고, 1~7층 처마 밑에는 얕은 3단의 받침이 있다.  탑의 정상부 상륜각부는 1석으로 조성되었는데, 본래의 것은 파손되어 따로 대웅전 앞에 보존하고 있다. 탑의 재료는 화강암이고, 높이는 4.3m다. 탑을 해체하여 현 위치로 옮길 당시 이두식 표기로 된 기록이 나왔으나 곧 소멸되었다고 한다. 대체로 조선 초기에 왕실의 발원으로 세워진 조형으로 추정된다.  

 

 

 

 

 

 

 

 

 

 

 

얼음 위의 저 석불아

겨울 친구 양측에 끼고 묘적사의 적막을 그리도 달래고 싶은가?

 

세상 이치에 둔한 석불아

산속 깊이 네 속살 묻어 시간을 버리느냐

 

아서라

봄이 오면

네 정든 친구들 모두 떠나고 너만 홀로 남을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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