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산행*여행/산길따라~

덕대산~금적산(옥천)......2021.04.25

by 마루금 2021. 4. 25.

산행날씨 : 6.1 ~ 22.6℃,  맑음

산행코스 : 덕수암 입구~덕수암 우회~대덕사 절터(옹달샘)~전망대~덕대산(575.1m)~안부(서낭당)~531.8봉(금릉김씨묘)~634.4봉~금적산(651.6m)~532.5봉~임도~쓰리 마을~양지말~덕수암 입구

산행거리 : GPS거리 10.86Km(알바 200m 포함) 

산행시간 : 6시간 14분(후미기준)

산행인원 : A팀(4명), B팀(3명)

덕대산~금적산(옥천).gpx
0.11MB

 

충북 옥천군의 외곽에 위치한 덕대산과 금적산을 연계해서 원점산행으로 다녀왔다. 덕대산은 옥천군 안내면과 보은군 수한면에 걸쳐있으며, 금적산은 옥천군 안내면과 보은군 삼승면에 걸쳐있다. 두 산 모두 금적지맥에 속한 산봉우리다. 이정표는 금적산 1곳에서만 볼 수 있었으며, 등로 상태는 덕대산 옹달샘 구간 외에는 대체로 괜챦은 편이나 갈림길에서 독도에 신경 써야 할 구간들이 많다.


주차지에서 본 금적산 능선

덕수암으로 진입

덕수암(굿당)

▼ 덕수암 경내로 연결되는 등로가 없었다. 마침 밖에 나와계시던 덕수암 관계자께서 등로를 자세히 알려준다. 덕수암 뒤로 돌아서 소로길을 따르다가 나타나는 작은 다리를 건너가라고 한다.

  

오르막 도중 옹달샘으로 가는 길과 좌측 능선으로 올라서는 길로 갈라진다. 여기서 옹담샘 등로를 택했다.

사람들이 거의 찾아들지 않는 등로라 희미하다.

너덜지대의 첫 돌탑

바로 위의 두 번째 돌탑

거대한 너덜지대를 계속 따라 오르는데 등로 분간이 어렵다. 파이프만 바라보고 쫓아간다.  

너덜지대 우측 편에서 만난 옹달샘 표지판 

애타게 찾아 헤매던 옹달샘은 폐사된 대덕사 절터에 있었다.

오래된 쉼터의자는 가장자리 나무가 썪어 뭉그러져 있었다.

물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는 옹달샘

 

<옹달샘 안내문에 기록된 내용>

덕대산 대덕사는 원래 비구니들의 절터였으나 임진왜란 시 의병 징집에 불참하려는 청년들의 피신처가 되자 절을 불태워 산 팔부능선에 절을 증원하였다는 유래가 있으며, 옹달샘은 승려들의 식수로 사용되었던 물로 장마와 가뭄에도 물의 양이 일정하여 등산객들의 목을 축여주고 있다.


옛 절터

▼ 대덕사 절터에서 덕대산 정상으로 연결되는 등로가 보이지 않았다. 사방으로 나무들이 웃자라서 주변을 가로막고 있었는데 그나마 보이는 것이라곤 옹달샘 앞 나무에 걸쳐있는 기록 없는 표지였다. 그 방향으로도 밀림에 가려져서 길이라고 판단하기가 힘들었다. 일단 다른 방법이 없어서 표지판 방향으로 무작정 진입해보기로 결정.   

 

▼ 절터의 옹달샘을 출발해서 가로막고 있는 나뭇가지를 제거해가며, 덤불울 뚫고 나가자 너덜지대의 돌로 잘 다듬어놓은 등로가 나타났다. 횡으로 이어진다.

 

등로 끝지점에 다다르자 또다른 옹달샘이 나타났다. 물이 보였고, 쇠그릇 3개와 물을 떠먹을 수 있는 바가지가 보였다.

절터에서 연결된 등로는 옹달샘 옆 묘지에서 끝이 났다. 이후부터는 억지 등로를 만들어가면서 전망대까지 연결했다.

전망대에 도착, 녹쓴 표지판과 산불감시탑이 있다. 금적지맥에 합류헤서 옥천과 보은 땅을 함께 밟고 가게 된다.

과거에는 전망대 조망이 좋았을 것이나 지금은 키가 자란 나무에 가려서 꽝! 개명이 필요할 듯 ~ 

전망대 이후로는 등로가 유순해진다. 

덕대산에서 1차 간식타임을 가졌다.

덕대산산성(德大山山城) ~
안내면 동대리와 보은군 수한면과 접하는 덕대산 정상에 있으며 문티재에서 남쪽의 능선을 따라 1.5km 정도 떨어져 있다. 성의 내부는 북고남저의 타원형의 형태이며, 얼핏 보면 산성인지 구분이 안 가나 안내면 동대리 음지말 마을 쪽으로 향하는 출입구 쪽의 무너진 성벽의 돌들이 많아 이곳이 오래된 산성임을 알려준다. 이곳의 능선 부근을 제외한 나머지 성벽은 모두 삭토한 토성으로 되어 있는데 둘레 약 150m 정도의 신라계 산성이다. 덕대산산성은 안내 쪽에서 보은을 가는 고개인 성의 북쪽에 있는 지금의 문티재와 성의 동쪽에 있는 고개인 쓰리 마을에서 보은을 넘어가는 고개를 경계하기 위한 축성으로 보이며, 주변의 다른 성들이 석성으로 축성된 것과 비교하면 망루 형태의 보로형 산성으로 여겨진다. 한편 덕대산의 남동방향에 있는 금적산 정상에서 북쪽 능선으로 1km정도 떨어진 봉우리(해발614m)에서도 성터의 흔적이 역력함이 있으나 민묘를 설치하여 훼손되어 안타깝다.

 

구병산 방향

 

금적산 방향

여기서 한 차례 알바 ~

묘지의 수렛길에서 왕복 200m 알바로 힘을 조금 뺐다.

금적산(우측 통신탑봉)

돌무더기가 있는 서낭당 흔적의 안부 

531.8봉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금릉김씨묘

철재파이프 울타리가 설치된 634.4봉 정상의 묘

 

634.4봉 묘지에서 바라본 금적산

좌우가 급경사인 금적산 능선 

오늘 처음 만난 이정표, 방향표시가 중심을 잃어서 제멋대로다.

금적산 정상의 산불감시탑

통신탑 1

1등 삼각점

통신탑 2

금적산의 금비둘기와 금송아지 ~
금적산에는 이름과 관련하여 금으로 된 동물이야기를 전설로 전하고 있다. 옛날에 사에는 금송아지와 금비둘기가 살고 있었다. 금송아지는 금비둘기를 아내로 맞이하기 위하여 산기슭에 밭을 일구어 금비둘기가 좋아하는 여러 가지 곡식을 거두었다. 양지바른 곳에 집을 짓고 바위아래 옹달샘을 파서 보금자리도 마련했다. 그런 다음 금비둘기에게 청혼하여 둘은 결혼하게 되었고 금슬 좋은 부부로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금송아지는 밭을 갈다가  넘어져 두 눈을 잃고 말았다. 금비둘기는 눈이 먼 남편을 위하여 열심히 봉양하였으나 금비둘기의 벌이로 금송아지를 먹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금비둘기는 해가 거듭될수록 지쳐갔고 짜증이 깊어져 둘은 자주 다투게 되었다. 마침내 금비둘기는 날아가 버리고 금송아지는 산기슭을 헤매며 아내를 부르다 지쳐 쓰러져 죽고 말았다. 그 후 금송아지가 죽은 산을 금적산이라 부게 되었다 한다. 때문에 지금도 꼬리 쪽인 안내면 오덕리에는 사금이 많이 나오고 머리가 있는 북쪽인 보은군 삼승면 선곡리에는 부자가 많다고 전해진다.

 

금적산봉수(金積山熢燧) ~
금적산 봉수지는 보은군 삼승면 서송원리와 안내면 정방, 오덕리 사이에 있는 표고 652m인 산으로 보은 남부와 옥천 동부 및 남부지역에서 가장 높고, 큰 산으로 옛지리지인 신승동국여지승람에는 금적산은 보은현 남쪽 25리 금적산 재 현 남 이십오리(金積山 在 縣 南 二十五里)에 있다고 기록되었다. 일제 강점기에는 금적산 기슭에서 황금이 쏟아져서 이 일대에서는 이 광산에 동력을 공급하기 위하여 최초로 전기가 들어오는 등 골드러쉬(gold rush)를 이루었다 한다. 이 봉수대는 간접봉수를 도와주는 간이봉수이다. 봉화대의 위치는 방송중계탑에서 30여m 떨어진 정상 표지석이 있는 주변으로 추정한다. 규모는 봉화지 둘레가 약 40m로 폭은 8~9m로 약간 둥그런 원형태로 축조연대는 고려시대에 만들어 사용되다가 조선 세조 때에 폐지되었다. 외내측 돌로 석축 쌓기를 2m쯤 하였으나 그곳에서 나온 유물을 발굴하지 않았고, 봉화지 유구형태가 정상에 중계탑 등 시설물을 설치하는 과정에 주변을 변화시켰으나 타 지역 봉화지 유구형태에 근접하므로 위치상으로 정상표지석이 있는 곳으로 추정할 수 있다.

 

예전의 금적산 산행기 : blog.daum.net/san2000/15961147

 

구봉산

특징 없는 532.5봉 정상의 모습

금적산에서 임도를 만나기 전까지의 능선 갈림길이 여럿 나타나므로 진행 방향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임도를 만나면 금적지맥과 이별하고, 임도를 따라서 쓰리 마을 방향으로 진행한다.

원점 도착으로 산행끝

건너편에 늘어선 가재봉 능선

참가: A팀(아누리,민들레,새벽,한마음), B팀(천둥,우리산,마루금)

728x90
728x9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