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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여행/발길따라~

성주사지(보령) .... 2019.08.16

by 마루금 2019. 8. 17.

 

성주산 산행을 마치고나서 빠져나오는 길목에 위치해 있어 들러봤다. 폐사 돼 사지만 남았지만 어마어마한 넓이라 얼핏 봐서도 대가람이었음을 쉽게 짐작할 수가 있다. 백제 때는 오합사라 했고, 통일신라 때는 성주사라 했다. 넓다란 사지에 그나마 유물 몇 기가 남아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었다.  

 

 

 

 

 

 

관리사무소 ~

 

< 주요문화재 >
성주사지 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국보8호)
성주사지 5층석탑(보물19호)
성주사지 중앙삼층석탑(보물20호)
성주사지 서 삼층석탑(보물 47호)
성주사지 동 삼층석탑(보물 2021호)
성주사지 석등(도지정 유형문화재 33호)
성주사지 석계단(문화재 자료 140호)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오층석탑이다. 오층석탑 뒤편에는 3기의 석탑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서있다. 모두 삼층석탑으로 신라 하대의 것으로 짐작된다 ~

 

 

 

 

 

새똥이 묻어 지저분해진 안내판 ~

 

 

 

 

 

 

 

 

 

 

 

 

 

 

 

 

낭혜화상탑비 비각 ~

 

 

 

낭혜는 무염국사의 시호이며, 신라 태종 무열왕의 8대손으로 어린 나이에 출가했다. 열세살의 나이에 입문한 낭혜는 21세에 당나라로 유학길을 떠나 그곳에서 선종을 익혔다. 귀국하여 성주사의 주지가 되어 신라의 선종을 크게 융성시킨 낭혜는 88세의 나이로 입적하였으며,진성여왕이 낭혜를 기리기 위해 시호와 함께 부도비를 세우게 되었다. 이 부도비는 전해오는 신라의 부도비 중에서 가장 큰 규모이다. 높이 4.5미터, 폭1.5미터, 두께42센티미터로 거의 원형모습을 잃지 않고 있다. 또한 비신을 받치고 있는 귀부 역시 조각이 화려하고 뚜렷하여 신라 부도비 중 최고의 걸작으로 꼽힌다.비신의 재질은 성주산이 주산지인 남포오석이다. 재질이 강하고 아름다워 세월이 지날수록 더욱 빛을 발한다는 남포 오석의 비신에는 5천여자의 비문이 기록되어 있다.

 

 

 

 

 

 

 

이곳에서는 백제 시대에서부터 조선 초기에 이르는 역사 유물이 발굴되고 있다고 한다 ~

 

 

성주사는 성인이 거하는 절이라는 뜻인데, 성인은 신라 말기의 명무염국사를 일컫는다. 무염국사가 성주사 주지로 있을 당시 성주사는 불전 80칸, 수각 7칸, 고사 50여 칸 등 천여 칸에 이르는 큰 규모였다. 이때 성주사에서 정진하는 수도승만 자그마치 2,000여 명에 달했다고 한다. 

 

 

성주사지 주변으로 성주산 휴양림과 석탄박물관, 심원동계곡 등의 관광 명소가 있어 함께 둘러볼 수 있다 ~

 

귀가 도중에 옥마산 능선에 자리잡은 옥마정을 들러봤다. 보령시가지 전경을 볼 수 있는 곳이다 ~

 

 

 

보령시가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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