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산행*여행/발길따라~

청류구곡 & 도림사 (곡성) .... 2018.11.25

by 마루금 2018. 11. 27.

 

동악산 산행 막바지에 들러봤다. 청류구곡(淸流九曲)과 도림사(道林寺) 및 도림사 계곡이 병존하는 곳이다. 이랫쪽의 도림사 계곡은 지방기념물 제101호로 지정된 자연발생유원로 많은 사람들이 찿아드는 휴식공간이다.

 

 

청류구곡(淸流九曲) ~

도림사(道林寺) 앞을 지나는 계곡이 청류계곡이다. 계곡 이름을 붙인 사람은 구한말 선비 하정(荷亭) 조병순(曺秉順·1876∼1921)과 춘기(春沂) 정순태(丁舜泰)다. 두 사람은 청류계곡 굽이마다 구곡(九曲)이라 이름을 붙이고 글을 새겨놓았다. 제1곡은 주차장 앞에서 시작된다. 제1곡은 쇄연문(鎖烟門),  제2곡은 무태동천(無太洞天), 제3곡은 대천벽(戴天壁), 제4곡은 단심대(丹心臺), 제5곡은 요요대(樂樂臺), 제6곡은 대은병(大隱屛), 제7곡은 모원대(暮遠臺), 제8곡은 해동무이(海東武夷), 제9곡은 소도원(小桃源)이다.

 

 

 

 

 

청류구곡 제1곡과 제2곡은 도림사 일주문을 통과하기 이전에 위치해 있다 ~ 

 

일주문 현판 ~

 

사찰 입장료가 있다 ~

 

 

 

 

 

 

 

 

산들목에 있는 도림사로 들어서면서 삼남 제일의 암반계류라 부르는 까닭을 알게 된다. 그다지 깊지 않은 계곡인데도 암반이 펼쳐지는 시원스런 품새는 삼남 제일이라는 과찬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이고, 길이도 200여m에 달한다. 이른바 청류구곡으로 일컬어지는 넓고 큰 암반 계곡이 길게 이어져 보는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도림사 계곡에 있는 제4곡 단심대 ~

사곡(四曲) 단심대(丹心臺)는 일편단심을 다짐하는 반석이다. 그 옆에는 서산강론(西山講論)이라는 큰 글자 아래 모두 9명 이름이 새겨져 있다. 조병순을 비롯해 당시 단심대에서 회합을 했던 사람들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이 가운데 박병선은 의병이었고, 정봉태는 훗날 연희전문학교에 7대를 모아온 가문(家門) 장서 묵용재 1만 권을 기증한 사람이다. 새긴 날짜는 정사년(1917년) 음력 오월 병신일이다. 장성 출신 위정척사파 의병장 노사 기정진과 손자 송사 기우만이 즐겨 찾던 곳이다. 조병순 또한 독립운동가였다. 서산강론 4년 뒤 조병순은 곡성경찰서에 끌려가 고문 끝에 죽었다. 1921년 그가 죽자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을 쓴 장지연이 곡성까지 찾아가 그를 기리는 비석을 세웠다. 장지연은 그 한 달 뒤 죽었다. 2011년 변절자라는 낙인이 찍혀 서훈을 박탈당하기도 한 장지연은, 죽을 때까지 지사(志士)의 죽음을 슬퍼한 우국지사였다. 진짜 변절자라면 조병순 유족들이 왜 도끼로 그를 처단하지 않고 술잔을 들어 맞았겠는가. 청류계곡 바위에는 이런 글들이 우글우글하다. 단순한 낙서가 아니다. 우국지사들 단심(丹心)을 읽지 않으면 도림사 청류계곡은 절반도 보이지 않는다. 경치 속에 숨은 역사와 문화까지 즐거운 입체적인 풍경, 문화산수(文化山水)다.

 

 

절 앞 500여m 지점에 있는 5기의 부도(浮屠) ~

 

 

 

 

 

 

 

 

 

 

 

 

 

도림사 소장 문화재 ~

절 일원이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2호로 지정돼 있다. 진입로에서 사찰 앞쪽으로 약 500m 지점에 5기의 부도(浮屠)가 있다.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19호로 지정된 도림사괘불이 있다. 1730년(영조 6)에 제작된 것으로 크기는 세로 300㎝, 가로 278㎝이다.

 

 

 

 

 

도림사(道林寺) ~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 화엄사(華嚴寺)의 말사이다. 660년(태종무열왕 7)원효(元曉)가 창건하였는데, 그 당시 풍악의 음률이 온 산을 진동하였다 하여 동악산이라 하고, 도인(道人)이 숲같이 모여들었다 하여 도림사라 하였다고 한다. 일설에는 582년경 신덕왕후(神德王后)가 절을 창건하고 신덕사(神德寺)라 하였는데, 660년 원효가 사불산화엄사(四佛山華嚴寺)로부터 옮겨와서 도림사로 개칭하였다고도 한다. 그 뒤 876년(헌강왕 2) 국사 도선(道詵)이 중건하고 지환(知還)이 중창하였으며, 조선 말기 처익(處翼, 1813∼1888)이 산내암자인 길상암(吉祥庵)을 창건하였다고 <동사열전(東師列傳)>에 보이는데, 당대의 유명한 목수장(木手匠)이자 승려인 영해(影海)도 도림사에서 주석하였다. 길상암은 현재 옛터 위에 토굴만 남아 있다.

 

 

현존하는 당우(堂宇)로는 ~

중심건물인 보광전(普光殿)을 비롯, 나한전(羅漢殿), 명부전(冥府殿), 약사전(藥師殿), 응진당(應眞堂), 궁현당(窮玄堂), 칠성각, 요사채 등이 있다. 보광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익공계(翼工系) 맞배지붕으로 겹처마에 단청이 있고, 응진전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기와집이며, 명부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기와집이다.

 

 

 

 

 

제 3곡부터 5곡까지는 일주문과 사찰 사이에 위치하며, 6곡부터 9곡까지는 사찰에서 윗쪽에 위치한다 ~

 

 

 

 

 

 

 

 

 

 

 

728x90
728x9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