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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여행/발길따라~

요선정, 요선암(영월) .... 2018.05.13

by 마루금 2018. 5. 16.

 

돼지봉 하산을 마치고 설구산을 오르기 위해 이동하던 중에 들렀다. 주천강가의 요선정과 요선암은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 중 한 곳이라는 법흥사 진입로에 위치하고 있다. 요선정과 그 옆의 마애불은 강원도 문화재로 지정돼 있으며, 주천강에서 자연 상태로 보존되고 있는 요선암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미륵암 ~

 

 

 

 

 

 

요선암(邀仙岩) ~
백덕산과 태기산 물줄기가 요선암 절벽 앞에서 하나가 되어 주천강을 이룬다. 억겁 세월의 물결에 깎여나간 화강암이 여러 모양의 기묘한 형태로 남아 주위의 수려한 자연경관과 어우러지면서 만들어낸 비경이 요선암이다. 조선 중기에 평창과 강릉부사를 지낸 유명한 풍류가 봉래(蓬萊) 양사언(楊士彦)이 이곳 경치에 반하여 선녀탕 위 바위에다 요선암(邀仙岩)이라는 글씨를 새긴 것이 이곳을 지칭하는 고유명사로 되었는데 지금도 그 글씨 흔적이 흐릿하게 남아있다.

 

요선암 돌개구멍 : 2013년에 국가지정문화재인 천연기념물 제 543호로 지정되었다 ~

 

 

미륵암과 요선정 연결로 ~

 

 

요선정(邀仙亭, 지방문화재 자료 41호) ~통일신라 말기 5교 9산 선문(禪門)의 하나인 흥령사의 안내 역할을 하는 절집 요선암이 있었다. 주천리 강나루에 있는 3층석탑, 무릉리 나루터의 3층석탑과 함께 이정표 역할을 담당하였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절집인 요선암은 폐허가 되었다. 지금은 이곳 요선정(邀仙亭)에 숙종, 영조, 정조임금의 친필 어제시(御劑詩)가 보관되어 있다. 1913년에 수주 요선계(이씨, 원씨, 곽씨)에게 정자를 건립하고, 주천 청허루에 보관중 방치되어 온 어제시현판을 가마로 모셔와서 지금까지 잘 보존하고 있다.

 

 

 

1929년에 주천 면장인 엄경렬(嚴敬烈)씨가 주천 보승회(保勝會)를 조직하고 빙허루를 복원하면서 수주면 요선계 측에 어제현판의 반환을 요구하였다. 결국은 법정 소송문제로 비화되어 경성 지방법원 원주지청에서는 22년 동안이나 어제현판을 관리, 보관해온 수주면 요선계 측에 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때 주천에서 현판을 찾아가 빙허루에 보관했었다면 6.25사변 때 빙허루의 소실과 함께 영원히 없어졌을 것이다. 그후 주천에서는 심명보의원이 중심이 되어 빙허루를 복원하고, 요선정의 어제현판을 복사하여 보관하고 있다.

 

 

 

 

 

5층 청탑, 범어(梵語, sanskrit)가 기록돼 있다 한다 ~ 

 

요선정을 묵묵히 지켜주는 석명단(石明壇) ~

 

 

 

숙종대왕 어제시 ~

 

憑虛淸虛兩樓詩一律病裏吟議 見會原州牧使?廷輔仍賜酒饌  ........ 病子(1720년) 正月二十八日

듣건대 주천에 두 누각이 있어 /  오랜 세월에도 그대로일세 /  높고 높은 석벽은 구름에 닿았고 / 맑은 강물은 질푸르게 이어 지도다. / 숲속에는 아름다운 산새 우짖고 / 봄날 들꽃은 뜰 아래에 비추네 / 술가지고 올라가 아이로 하여금 따르게 하니 /  취하여 난간에 기대여 낮잠이 드네.

 

빙허, 청허, 양루를 읊는 시는 병(病)중에 읊으신 것으로 원주목사 심정보에게 내리고 술과 안주도 내리셨다. (영조가 부왕 숙종이 읊은 시를 친필로 쓴 후 주천에 내림)

 

 

 

 

 

주변 볼거리 모현사(慕賢祠) ~요선정에서 1km 거리에 토실(土室) 모현사가 있다. 무릉 3리의 중심마을로 도곡(道谷)또는 톡실, 토실이라 한다. 생육신 관란(觀瀾) 원호(元昊)선생이 이곳에서 은둔생활을 할 때 토굴을 파고 기거했으므로 토실이라 하였다. 숙종(1699년)임금은 토굴자리에 연시각(廷謚閣)이라는 정려각을 세우게 하였다. 여지도서(與地圖書)에 '元昊 號 觀瀾 登文朝官至集賢殿直提學退事端宗及遜位隱居州南霧巷村位端宗裏三年且不接冠 冕人口不言朝庭事世祖時除?曺參議 召不就肅朝己卯(1699년)莊陵復設後相臣崔錫鼎陳命旌閣'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후 고종 때 제천 모산사람인 판서(判書) 심상원(沈相元)이 참배 차 왔다가 현판이 소실된 것을 보고 모현사라는 친필현판을 달았다. 건물은 솟을 삼문 주위로 담을 두르고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으로 사당을 건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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