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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여행/발길따라~

고찰 대흥사(단양) .... 2013.09.01

by 마루금 2013. 9. 4.

 

 

대흥사 (大興寺) ~
본래 천년고찰이었으나 근래 새로 깔끔하게 건축되었다. 신라 선덕여왕(646년)때 자장율사가 통도사와 함께 창건하였으나 왜군과 의병이 교전하는 과정에서 소실되었다. 한때 200칸이 넘는 대가람이었다. 수도하는 승려가 천명이 넘고, 불제자가 500 나한이나 모셔진 거찰이었다. 부속암자로 청련암, 원통암, 망월암, 굴암 등이 있었으나 원통암과 청련암만이 현재 남아 있다.  6,000평이 넘는 부지에는 지금도 기와편과 주초석, 석축들이 심심찮게 발견되고 있다.

 

 

 

 

 

 

 

 

 

 

 

 

 

 

 

 

 

<여지도서>, <호서읍지> 등에 기록이 있는 사찰로서 많은 전설과 설화를 간직한 곳이다. 대흥사가 전소되자 전국적으로 이 소식이 퍼져 나갔다. 금강산 유점사 점심식사 시간에 어떤 노승이 나타나 "충청도 단양 대흥사에서 왔는데 절이 전부 불타고 오백나한상만이 남았다. 나한상을 옮겨야 하겠으니 맞을 준비를 지체 없이 하라" 하여 주지스님이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어서 드십시오" 라 하자 어느새 스님이 사라지고 남쪽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나한 수백 명이 내려오고 있음을 주지스님이 보고 종을 쳐서 맞을 준비를 마치고서 금강산 8만 구암자에서 사람을 모았으나 497명밖에 아니 되었다.

 

주지스님 인솔로 8일만에 단양 대흥사에 도착하여 보니,  202칸 기와집은 폐허되고, 나한전도 파괴되고, 500나한이 흙속에 있어 손질하여 세우고, 497명에게 한 분씩 등에 지게 하니 3구가 남아 다시 올 수가 없어, 주지스님이 힘이 센 3명에게 두분의 나한상을 지게하고, 주지스님의 구명으로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을 외치니 천지가 진동했다. 10일만에 유점사에 도착하여 니한전에 모시고 예불을 마쳤다.

 

이튿날 라한전에 가보니 3구가 보이지 않아 모두 모여 확인하였으나 497구 밖에 없어 모두가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공중에서 큰소리로  "대중들이여 들으라. 500나한 중 어느 한 분도 득도를 못한 분이 있겠는가! 그러하다면 어떠한 분은 한사람씩 편안하게 등에 업혀 오는데 나는 두분씩 한사람 등에 업혀오니 도중에서 불편함이 말이 아니었느니라. 이것은 대중들의 무성의로 이 같은 꼴이 된 셈이요. 그래서 나는 이러한 불편스러운 일을 더 이상 참지 못하여 유점사를 떠났소. 그러니 더 이상 찾지 말고 그대로 두시오"라 했다.  모여있던 주지스님이하  여러 스님이 "황공하옵니다."를 외치고,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을 외우고 사죄하였으나,  세분의 나한은 영영 금강산 유정사로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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