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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여행/발길따라~

청룡사지(충주) .... 2023.12.10

by 마루금 2023. 12. 10.

 

 

 

충북 충주시 소태면의 청계산 산행을 진행하던 중에 들러보게 되었다. 청계사지는 지금은 폐허가 되어 없어진 옛 절터다. 고려말 청계산 중턱에  작은 암자로 있던 것을 이태조의 사부 보각국사가 은거하고 있었으므로, 태조가 대사찰을 세우도록 하였다 한다. 현제  부근에 보각국사의 부도탑인 정혜원융탑과 석등, 정혜원융탑비 등이 남아 있다.

 

 

 

 

 

 

청룡사위전비

 

 

 

 

▼ 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비(보물 제658호 / 1979년 05월 22일 지정)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활동했던의 승려 보각국사를 기리기 위해 세운 비다. 조선 태조 3년(1394) 문인선사 희달이 왕의 명을 받아 세운 것으로 권근이 비문을 짓고, 승려 천택이 글씨를 썼다. 보각국사탑과, 사자석이 함께 있다.

 

 

 

 

 

 

▼ 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국보 제197호 / 1979년 5월 22일 지정)
보각국사의 사리를 모셔놓은 탑이다. 무너져 있던 것을 1968년 복원하였다. 보각국사는 고려 후기의 승려로, 12세에 어머니의 권유로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으며, 이후 불교의 경전을 두루 연구하여 높은 명성을 떨치었다. 특히 계율을 굳게 지키고, 도를 지킴에 조심하였으며, 문장과 글씨에도 능하였다. 조선 태조 원년(1392)에 73세의 나이로 목숨을 다하자, 왕은 보각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탑 이름을 정혜원륭(定慧圓融)이라 내리어 탑을 세우도록 하였다.  

 

 

 

 

 

 

▼ 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 앞 사자 석등(보물 제656호 / 1979년 05월 22일 지정)
이 석등은 보각국사의 명복을 빌어 주기 위해 그의 사리탑 앞에 세워진 것이다. 3단의 받침 가운데 아래받침돌 아래에 사자 조각이 있어서 사자석등이라 부른다. 경기도 양주의 회암사지 쌍사자석등과 더불어 조선시대 사자석등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 절터에서 석등을 사리탑, 탑비와 나란히 세운 것은 조선시대의 배치방식이다. 3 비의 기록으로 볼 때 이 석등은 조선 전기인 태조 1년(1392)부터 그 이듬해인 1393년에 걸쳐 세워진 것으로 추정한다.

 

 

 

 

 

 

 

 

▼ 충주 청룡사지 석종형승탑(충청북도 문화재자료 제54호 / 2006년 03월 03일 지정)
조선시대의 전형적인 석종형 부도다. 조선시대에 유행한 전형적인 종 모양으로 지붕돌, 팔각원당형 부도재 등의 유물과 함께 보호각 안에 놓여 있다. 탑의 몸 앞면 가운데 부분에는 문자를 새긴 흔적이 있다. 마모가 심해 육안으로는 쓰인 글씨를 쉽게 알 수 없으나 ‘적운당사리탑(跡雲堂舍利塔)’이라 쓰인 것으로 보인다. 

 

 

 

 

 

 

 

 

 

 

청룡사지에 얽힌 전설 
조선조 말엽 민씨네가 득세를 할 때 청룡사 윗자리에 명당이 있다 하여 민씨네가 이곳으로 이장을 하였다. 그런데 풍수설에 따르면 명당자리 부근에 절이 있으면 좋지 않다는 것, 그래서 절을 없애기로 했다. 당시 이곳에는 허씨들이 살고 있었는데, 그들의 세력이 컸고, 사찰의 운영권도 쥐고 있어서 절을 없애는 게 쉽지 않았다. 그래서 민씨 가에서는 비밀리에 사람을 사 절에다 불을 지르기에 이르렀다. 그때 이 절 지붕에서 살 던 큰 뱀이 내려와 불을 지른 사람의 앞을 가로막자 한 사람은 놀라 자빠져 피를 토하며 죽고, 또 한 사람은 발이 떨어지지 않아 불에 타 죽고 말았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그 절 위에 쓴 민씨 산소에 벌초를 하러 오는 사람까지도 오기만 하면 생명을 잃고 갔기에 산소도 묵모이로 옮겼다고 한다.

 

 

 

 

공터로 남은 청룡사지

 

 

청룡사(청룡사지와는 역사적 관련이 없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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