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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여행/발길따라~

목포 근대역사문화가 살아 숨쉬는 만호동 거리(1편) .... 2019.06.08

by 마루금 2019. 6. 10.

 

 

 

유달산 산행을 마치고 나서 만호동 구 도심을 돌아봤다.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으로 지칭되는 곳이다. 대한제국 개항기에 목포 해관 설치에 따른 근대기 통상 항만의 역사와 일제강점기를 거쳐 해방 이후까지의 생활사적 모습을 동시에 보여주는 장소로서 2018년 8월 6일 대한민국의 등록문화재 제718호로 지정되었다.

 

 

 

 

 

한 때 이곳이 목포의 중심가였다고 한다. 서울의 명동처럼 말이다. 그러나 지금의 수준으로 봐서는 별로 볼 게 없는 곳이다. 거리의 모습에서 어떠한 화려함도, 고고한 느낌도 묻어나지 않는다. 다만 한 세기 전후를 거쳐온 고령의 늙어빠진 건축물들이 여러 곳에 퍼져 발전을 미룬 채 자리를 메우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 속에는 분명 숨은 진주알 같은 스토리들이 숨겨져 있을 것이다. 이러한 꺼리들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건축물들의 외적인 모습보다는 내면이 품고 있는 가치를 잘 찾아내야 할 것으로 본다. 즉 눈팅으로 훑어보는 느낌보다는 가슴으로 읽어내는 느낌만이 그 속의 알짜배기 꺼리들을 끄집어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 목포근대역사관 1관 앞 도로

국도 1호선, 2호선 기점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도로 바닥에는 목포가 한반도의 시작점인 국도1호선과 2호선이 시작되는 출발지임을 상징하는 도로원표가 있다. 1호선은 목포에서 서울을 지나 신의주까지 연결되던 도로였고, 2호선은 목포에서 부산까지 연결된다. 국도 1호선은 일제강점기에 신작로를 설치한 것을 근간으로 하는데, 충청남도 천안 이북 구간은 조선시대 대로와 거의 일치하지만, 이남 구간은 일본의 미곡 수탈과 식민 통치의 목적으로 개설한 것이다.

 

 

 

 

목포근대역사관 1관(구 일본영사관) 앞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

 

 

 

목포근대역사관 1관(구 일본영사관) 
국가사적 제289호로 지정되었다. 목포 최초의 서구적 근대 건축물이다. 1900년 12월에 일본영사관으로 지어졌다가 목포시청, 시립도서관, 문화원 등으로 사용된 근대역사 창고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북한군의 본부로 사용되기도 했으며, 건물 외부에는 66발의 총성 자국이 남아있다. 역사관 건물 바로 뒤편에는 일본 전쟁준비의 흔적을 살펴볼 수 있는 방공호가 있다. 내부에는 굴을 파기 위해 강제 동원된 조선인들의 모습을 전시하고 있다.

 

 

 

 

 

일제가 제2차 세계 대전을 치르면서 한반도에도 전쟁이 있을 것을 대비하여 요지마다 방공호를 만들어 대비하였는데 이 방공호도 그중의 하나다.

 

 

 

 

▼ 구 목포부청 서고(舊 木浦府廳 書庫) 
2014년 4월 29일에 등록문화재 제588호로 지정되었다. 일제강점기 건축물이다. 건립 시기는 목포부청이 개칭(1910.10.1)된 이후이며, 용도는 부청의 서고로 지어진 것이다. 건립 당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으며, 석재 가공 및 쌓기 등도 우수한 편이다. 창고를 석조로 하는 경우는 근대기 일본의 영향이며, 표면은 흑두기로 되어있으나 전면 양측 모서리만은 둥글게 잔다듬으로 처리하였다.

 

 

 

 

 

 

 

▼ 목포 번화로 일본식 상가주택(등록문화재 제718-7호) 
근대기 목포의 대표적 번화가이자 중심거리였던 본정의 사거리 모퉁이에 위치한 점포주택 건물로 근대기 동양척식주식회사 주변 시가지의 흔적과 기억을 담고 있고, 해방 이후 상업 경제 공간 요소를 보여주는 건축물이다. 건축형식은 1층은 일본 전통신발인 게다를 판매하는 점포였고, 2층은 주거용 주택을 형상한 일본식 도시점포주택 형식인 마찌야 형식의 주상복합형 건축물로 모서리 벽면을 45도 방향으로 처리한 점이 특이한 구조다.

 

 

 

 

 

 

목포근대역사관 2관
1999년 11월 20일 전라남도 기념물 제174호에 지정되었다.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으로 1920년 6월에 건립되었고, 현재는 목포근대역사관 2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근세 서양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건물로서 한국역사의 자각의식을 불러일으키는 일제 침략의 실증적 유적이다.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에서 보았던 일제 수탈의 중심지인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이 바로 이곳이다. 일제시대 자료와 일제침략에 맞서 싸우던 우리 민족의 치열한 구국 운동의 숨결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 천주교 경동성당 
2012년 5월 21일 목포시의 향토유적 제22호로 지정되었다. 동양척식목포지점 뒤쪽의 가까운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1951년 5월 8일 대지 599평을 목포시로부터 매입해 1952년 11월에 본당 및 사제관 공사를 시작하여, 1953년 1월 15일에 사제관이 먼저 준공되었고, 본당은 1954년 7월 7일에 완공되었다. 1966년 3월에는 본당 정면이 지반 침하로 균열이가 전면부를 완전 해체하고 현재의 모습으로 새로 개축하였다. 그러나 전면부 외 나머지 구간은 건립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갖추고 있다. 교회 경내에는 현재 본당과 근래에 새로 지은 사무실과 사제관 등이 있다.

 

 

 

 

 

 

 

 

▼ 갑자옥(甲子屋) 모자점 
갑자년인 1924년에 문을 열었다. 첫 주인은 이씨다. 일제시대 목포 혼마치(本町·중심가)에서도 제일 중심이었다. 그때 본정통(本町通) 가게는 죄다 일본인들이 했는데 갑자옥이 유일하게 한국인이 운영한 가게였다. 그게 갑자옥의 자랑거리였다. 이씨네 집안은 일제시대 때 일흑삼백(一黑三白: 김, 면화, 쌀, 소금) 특산물밖에 없던 목포에서 모자라는 신상품으로 부자 대열에 합류했다.

 

 

 

 

 

 

 

▼ 창성장 
간판을 못보고 그냥 지나칠 뻔했다. 막상 현지에 들러보니 메스콤에 오르내릴 만큼 시끌벅적하기엔 규모가 초라하다. 손혜원 의원의 조카와 지인 등이 2017년에 사들여 리모델링해 게스트하우스로 운영하고 있다. 예전 요정으로 사용했던 건물이라 한다.

 

 

 

 

마주쳐 오는 사람과 비켜갈 정도의 좁은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면 출입문이다. 숙박신청자 외에는 내부로 진입할 수 없다.

 

 

 

창성장의 아담한 뜰

 

창성장 출입문 옆쪽의 폐건물 내부 모습

 

창성장 출입문에서 바깥쪽으로 바라본 풍경

 

 

 

 

▼ 목포 해안로 일본식 상가주택(등록문화재 제718-8호) 
근대기 목포지역의 대표적 번화가이자 상업중심거리였던 구 목포경찰서 앞 교차로 모퉁이에 건축된 대규모 상가 건물로 기본적 건축형식은 일본 마찌야 형식으로 2층 규모의 목조건물이며, 1층은 전면 도로면에 여러 개의 상업용 점포들을 형성하였고, 2층은 주거 기능을 형성한 상업거리의 흔적, 역사성, 장소성을 보여주는 상가 건물이다.

 

 

 

 

▼ 목포 해안로 교차로 상가주택(등록문화재 제 718-9호) 
근대기 목포의 대표적 번화가이자 중심지였던 구 목포경찰서 앞 교차로에 면해 건축된 가장 상징적 상가건물로 교차로에 면한 부정형 다각형의 대지에서 대지 형태에 맞춰 부정형의 다각형 평면과 독특한 외관을 구성하였으며, 특히 교차로 모서리에 면한 수직적 벽체를 아치형 창문과 옥탑 장식을 강조한 일본 마찌야 형식으로 2층 규모의 목조상가주택이다. 주거 기능을 형성한 상업거리의 흔적, 역사성, 장소성을 보여주는 보존상태가 양호한 상가건물이다.

 

 

 

 

 

 

 

 

 

 

 

 

▼ 김은주 공예창작소 

1897년 개항문화거리의 작은 공예창작소 둥지다. 목포를 상징하는 아기자기한 멋진 공예품들이 여기서 만들어진다. 
 

 

 

 

 

 

 

 

 

 

▼ 손소영 갤러리 카페
손혜원 의원의 조카 손소영이 운영하는 카페다. 창성장과 멀지 않은 곳에 있다. 도보로 3분 거리다. 손소영 카페는 2층짜리 목조 건물을 개조했다.  목조를 유지하되 1층 전면을 유리창으로 단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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