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달재(朴達峴, 453m) ~
의림지 구경을 마치고 이 고개를 넘었다. 높은 고개다. '울고넘는 박달재'란 노래까지 있듯이 이 고개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 드물 것이다. 어디 붙었는지는 몰라도 적어도 그런 고개가 있다는 것쯤은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제천 북쪽의 봉양과 충주 사이를 잇는 터널 위 38번 국도변 구도로에 있다.
고개턱에는 서원휴게소와 넓은 광장이 있다. 각종 조형물과 성황당, 김취려장군 전적비 등을 둘러볼 수 있다.
박달재는 아득한 옛날 우리민족의 소원과 함께 하늘에게 천재를 올리던 성스러운 곳이다. 박달은 순수 한 우리말로 한자의 뜻으로 가진 의미는 없다. 박은 밝다, 크다, 하얗다, 높다, 성스럽다 등의 여러가지 의미를 갖고 있는데, 이것이 한자어로 차용이 되면서 朴, 白, 弗, 不, 發 등으로 쓰였다. 달(達)은 산이나 언덕 등을 나타내는 알타이어어의 고어이며, 단군신화 속에서 나타나는 아사달, 금미달 등이 그것이며, 특히 고구려에서는 지명에 많이 쓰였다.
그러므로 박달은 白山으로 풀이 되는데 이 백산은 태백산, 백두산 등과 동일한 의미와 기능을 갖고 있다. 단군조선을 세우신 단군왕검의 단(壇)은 흔히 박달나무 단자로 이해되고 있으나 이는 박달 즉 백산을 의미한다. 따라서 단군왕검은 백산 또는태백산의 임금을 말하는 것이다. 단군이래로 우리민족이 천제를 올리던 백산은 여러 곳에 있다. 그리고 그 산들 중의 하나가 바로 이곳에 있는 천등산 박달재인 것이다.
박달재는 조선조 중엽까지 이등령이라 불렀다. 이는 천등산 지등산이 연이은 고개마루라는 뜻이 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곳에는 인등산도 함께 있어 天, 地, 人 이름이 모두 갖추어진 유일한 곳이다.
옛 비석에 있던 글 ~
<천관우 지음/ 현 수근 씀>
치악산의 맥이 뻗어 백운산이 되고, 그 줄기가 다시 남으로 달려 구학산, 박달산, 사랑산을 이루니 이 박달재는 동서로 봉양과 백운을 잇고, 멀리는 제천과 충주를 잇는다. 1216년 고려 김취려(金就礪), 석수(石壽)장군이 거란의 대군을 여기서 물리쳤고, 1268년 고려의 이 고장 별초군(別抄軍)이 또한 여기서 몽고의 군사를 막아냈다. 영남땅 도령 박달과 이 재 아랫마을 처녀 금봉의 애닮은 사연이 전해오기도 하고, 박달은 태고적부터의 유래를 지닌 백산(白山)의 뜻이라고도 하나, 이 오랜 일들을 오늘날 뉘 소상히 알랴. 이 재를 쉬고 넘는 길손들을 위해 간략히 적어둔다
박달재는 봉양에서 8km 떨어진 지점이다. 고개턱에 서면 동쪽(봉양)은 휘어져 내려간 산 때문에 태반이 가려지지만 서쪽은 다르다. 산과 산미로 빠꿈히 뚫린 쪽에 충주 방면 들판이 보이고, 오른쪽 산은 점점 높아지면서 아득한 구학산(九鶴山)의 정상 부근을 보여준다.
김취려장군 전적비 ~
경은사 ~
구학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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