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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와 새재(鳥嶺) - 2편 '새' 무리의 땅이름들 '새'는 음이 소(牛)나 쇠(金,鐵)를 닮아 우수(牛首), 금천(金川), 철원(鐵原) 같은 지명을 낳았다.강원도에서 '새'가 '시'로 되어 '샛내'가 '쉰내'(五十川)로 된 것도 흥미를 끈다. 새말/새터/새터말(新村:신촌/新基:신기/新垈:신대) 이러한 지명은 전국에 수없이 많다. 대부분 새로 이루어진 마을이라 하여 이런 이름이 붙었는데, 이런 이름에서 나온 행정지명인 신촌동(新村洞), 신촌리(新村里)가 서울 서대문구를 비롯해 성남시, 경기 광주 실촌면, 안성 서운면, 강원 춘성 신동면, 횡성 공근면, 충북 청원 강내면과 옥산면, 충남 연기 금남면, 당진 우장면, 금산 부리면 등에 있다. 신리(新里), 신동(新洞)도 신촌과 같은 뜻이다. 금촌(金村)도 전국 곳곳에 많은데, 대개 '새.. 2006. 8. 26.
새와 새재(鳥嶺) - 1편 새와 새재 새도 못 넘는 고개라지만 (참조: 옛글 모음자의 "아래아"와 "반시옷"을 표식하지 못하므로 그 부분은 적색 처리 하였슴) 경북 문경시 문경을 상초리와 충북 괴산군 연풍면 원풍리 사이에 '새재'(鳥嶺: 조령)가 있다.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에 원군으로 온 명나라 장수 이여송이 더 없는 천연의 요새라 감탄했음에도 우리의 신립(申砬) 장군이 이를 이용하지 못해 쳐 들어올라오는 적군에게 길을 터 주고 만, 한 서린 고개이다. 신립 장군의 참모인 김여물(金汝物)이 새재에다 진을 치자고 했으나 이를 듣지 않고 충주 탄금대에서 달내(達川)를 뒤로 두고 배수진을 치고 싸우다가 그나마도 패하고 말았다. 동국여지승람에는 '이 고개 이름을 조령(鳥嶺)이라고 하지만, 세상에서는 초점(草岾)이라고 한다'고 기록하고 있.. 2006. 8. 24.
홍천 가리산(加里山) - 2편 '갈' 무리의 땅이름들 '갈' 무리의 땅이름들을 살펴보기로 한다. * 가리/가락/가야(加羅:가라/駕洛/加耶) (참조: 옛글 모음자의 "아래아"와 "반시옷"을 표식하지 못하므로 그 부분은 적색 처리 하였슴)삼국시대 고구려 땅이었던 강원도의 간성군(杆城郡)은 삼국사기지리지에는 '가아홀'(加阿忽)로 나오고세종실록지리지에는 '가라홀'(加羅忽)로 일컫기도 한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가랏골'의 한자 표기로 볼수 있다. 김해지방의 '가라'(加羅,駕洛,加耶)는 낙동강의 지류 때문에 붙여진 지명이며, 결국 낙동강(洛東江)이란 지명도 '가락(加洛)동쪽의 강'이란 뜻에서 붙여진 것이다. 산이나 고개 이름도 가라산(加羅山: 경기 고양 지도읍 토당리), 가라치(加羅峙: 강원 김화군 임남면), 가라지령(加羅址嶺: 평남 맹산군 화.. 2006. 8. 16.
홍천 가리산(加里山) - 1편 홍천 加里山 갈과 가리산 가리산 일대의 '갈' 지명들 우리나라의 땅 이름들은 그 지역의 지형적 특성에 따라 산, 내, 들(벌) 등에 연유하는 것이 대부분이어서,산이 많은 곳은 산과 관련된 이름들이, 물이 많은 곳은 물과 관련된 이름들이 몰려, 서로 이웃해 있는 마을까지도 서로 혼돈할 만큼 같거나 비슷한 경우가 많다. 강원도의 가리산(加里山) 주위에는 소양강과 홍천강 등의 지류들이 많은데, 이 지류들로 인해서 이 일대에는 물과 관련된 비슷비슷한 경우가 많다. 우선 가리산 동쪽의 홍천군 두촌면에는 가마봉(可馬峰: 1192m)과 매봉(鷹峰: 응봉:800m)에서 각각 발원하여 원동(遠洞)에서 합치는 홍천강이 남서쪽으로 흘러가는데, 이 냇줄기 양쪽으로 '갈'에 연유하는 가래들(가래뜰), 갈미봉 외에 샘재(泉峙:천.. 2006. 8. 16.
강화 마니산(摩尼山) - 2편 '말'무리의 땅이름들 (참조: 옛글 모음자의 "아래아"와 "반시옷"을 표식하지 못하므로 그 부분은 적색 처리 하였슴)'말' 무리의 땅이름은 전국 각지에 적지않게 분포하고 있다. 잘 알려진 마니산(摩尼山)이나 마등령(馬等嶺)도 이 계통의 대표적 지명으로 꼽을 수 있다. 마리/마니 (摩離/摩尼/頭嶽/宗山) 강화도의 마니산은 원래 단순한 뫼(山)의 뜻인 '마리'로 불리어 왔던 것으로 여겨진다. 주민들은 아직도 '마리산'으로 부르는 사람도 있고, 한자로 마리산(摩離山)으로 기록된 옛 책들도 있다. '마리'는 '머리'의 옛말이기도 해서 두악(頭嶽), 두산(頭山), 종산(宗山) 등으로 불리었다. 마니는 마니즘(manism: 페르시아의 마니교)과도 통하지만 여의주(如意珠: 용의 턱 밑에 있다는 구슬로, 사람의 뜻대로.. 2006. 8. 5.
강화 마니산(摩尼山) - 1편 마루와 마니산 죽지랑의 일화 신라 초기에 술종(述宗)이라는 행정관이 삭주 도독사(朔州 都督使)가 되어서 임지로 가게 되었다. 때마침 삼한에 병란이 일어 그는 기병 3천의 호송을 받으며, 죽지령(지금의 죽령)을 넘게 되었다. 고개에 이르니 한 거사가 고갯길을 닦고 있어 이를 칭찬하니, 거사도 역시 술종의 혁혁함을 좋게 여겨 마음이 통해 친한 사이가 되었다. 술종이 임지에 도착한지 한 달쯤 되던 날 밤의 꿈에 죽지령에서 만났던 거사가 방으로 들어 오는것을 보았는데, 역시 그의 아내도 같은 꿈을 꾸었다. 거사의 신변에 어떤 일이 있을 듯 싶어 사람을 보내어 알아 보니 거사가 죽은지 며칠이 되었다는 것이다. 날수를 따져 보니 거사가 죽은 날이 바로 아내와 같은 꿈을 꾸던 날이었다. 술종은 군사들을 보내어 고개 .. 2006. 8. 5.
살과 설악산(雪岳山) - 2편 '살'무리의 지명들 설뫼(雪峰/雪岳/雪嶺/雪馬/雪梅) (참조: 이 문장에서 옛글 모음자의 "아래아"를 표식하지 못하므로 그 부분을 적색으로 처리함) 설악산은 삼국사기에 설화산(雪華山)이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한계산(寒溪山)이라고도 불리었고, 불교에서는 설산(雪山) 또는 설봉산(雪峰山)이라고 불러 왔다. 설악산에 대한 이름 유래는 옛 문헌에 모두 눈(雪)과 관계가 있다. 한가위부터 내리기 시작해 쌓인 눈이 하지에 이르러 비로소 녹으므로 설악이라 한다. 산마루에 오래도록 눈이 쌓여 바위가 눈같이 희다고 하여 설악이라고 이름 지었다. 설악산 외에도 전국에는 설성산(雪成山), 설봉산(雪峰山), 설한령(雪寒嶺), 설운령(雪雲嶺), 설마치(雪馬峙), 설령(雪嶺), 설암산(雪暗山), 설우산(雪雨山), 설주봉(雪柱峰).. 2006. 7. 26.
살과 설악산(雪岳山) - 1편 '살'과 설악산 수월봉의 전설 제주도 북제주군 한경면 고산리 바닷가에 수월봉(水月峰)이라는 구릉 비슷한 봉우리가 있다. 이 봉우리의 절벽은 깍아지른 듯 운치있는 정경을 드러내고 있는데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옛날에 이 산 근처에 수월이라는 소녀가 남동생과 함께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머니가 병이 들어 두 남매가 백방으로 약초를 구하러 다니던 중 지금의 수월봉 절벽 사이에 자생하고 있는 오갈피라는 풀이 어머니의 병을 고칠 수 있다는 소문을 듣게 되었다. 두 남매는 수월봉 절벽으로 갔다. 그러나 절벽이 너무 험해 내려갈 수가 없었다. 수월이는 남동생을 절벽에 업드려 있게 하고, 그 남동생의 손을 힘있게 잡은 다음 한 발자국씩 절벽 아래로 내려갔다. 조금 내려가니 오갈피가.. 2006. 7. 25.
한밝과 태백산(太白山) - 3편 부루에 대한 또 다른 해석 (참조: 이 문장에서 옛글 모음자의 "아래아"를 표식하지 못하므로 그 부분을 적색으로 처리함) 부족국가 새대에 있었던 고구려의 '새밝'(東盟: 동맹) 행사나 신라 중기부터 있어 온 '팔관회(八關會)등은 모두 부루 신앙의 원천이라고 한다. 신라시대의 화랑들은 이 부루신앙을 간직하고, 전국의 명산대천을 순례했는데, 그들의 발길이 자주 닿은 명산 중에 '밝'에 연유하는 '백'자 지명이 많이 붙었다고 한다. 따라서 '비로봉의 '비로'도 '밝' 무리의 지명으로 보는 것이다. 그런데 이 '비로'를 승려가 불교 경전속에 있는, '부루'와 비슷한 발음의 것을 찿아 붙였다는 것이다. 범어로 Vairocana, 부처의 진신(眞身)을 나타내는 칭호인 비로자나불(毘盧蔗那佛)은 산스크리트어로 '태양'.. 2006. 7. 19.
한밝과 태백산(太白山) - 2편 '한'의 말 뿌리 (참조: 이 문장에서 옛글 모음자의 "아래아"를 표식하지 못하므로 그 부분을 적색으로 처리함) '한'의 뜻을 설명해 가려다가 이야기가 엉뚱한 방향으로 빠졌지만, 여기서 '한여울', '한밭' 등의 한'의 말뿌리를 잠시 캐어 볼까 한다. 먼저 다음 말들을 비교하여 그 공통점을 생각해 보면 '한'의어원을 밝히는데 도움이 된다. 해 > 해(日) - 핸 > 흰(白) 블 > 불(火) - 발근 > 붉은(赤), 밝은(明), 바른(正) 픝ㅅ > 풀(草) - 프른 > 푸른(靑) 감 > 감(閉) - 감은 > 검은(黑) 믈 > 물(水) - 믉은 > 묽은(稀) 둠(圓) - 둥근(圓) 알 샌(새로 밝은) 어떤 상태를 관형적으로 나타낼 때, 어떠한 이라는 연체형.. 2006. 7. 19.
한밝과 태백산(太白山) - 1편 한탄해서 한탄강 이라는데 . . . '한탄강'이라 하는 강이 있다. 임진강의 한 갈래로, 강원도 평창군과 함경남도 안변군과의 사이에있는 추가령(楸哥嶺. 550m)에서부터 시작, 추가령지구대를 따라 흘러내려 경기도 연천 부근에서 재인폭포로 마무리하고, 본류에 흘러드는 제법 큰 물줄기인데, 길이가 136km나 된다. 이름을 음 그대로 들으면 무슨 큰 한탄(恨歎)이 굽이굽이 서렸기에 한탄강일까 생각해보게 한다. 이 강에 다음과 같은 유래가 전해 온다. 후삼국시대, 태봉의 궁예는 남쪽으로 내려가 후백제와 싸우고, 수도인 철원으로 돌아오던 어느 날, 이 강을 건너다가 강가의 돌들이 모두 구멍이 송송 뚫려 있는 것을 보고는 다음과 같은 한탄을 했다고 한다. "아! 돌들이 모두 좀먹고 늙었구나, 내 몸도 이제 저 돌.. 2006. 7. 19.
밝음과 박달재 - 3편 수호신 산을 '밝'으로 (참조: 이 문장에서 옛글 모음자의 "아래아"를 표식하지 못하므로 그 부분을 적색으로 처리함) '밝'은 산 이름에 '백'(白)이나 '박'(朴)으로 주로 들어가 있음을 보았다. 위에 든 산이름 외에도 백운대(白雲臺: 서울 북한산), 백양산(白楊山: 부산), 백석봉(白石峰: 충북 진천), 백모덕(白茅德: 함남 개마고원), 백마산(白馬山: 충북 음성), 백사봉(白沙峰: 함북 회령), 박골령(朴骨嶺: 낭림산맥 남부), 박달봉(朴達峰: 경기 포천이동), 박리산(朴李山: 평북 국경근처), 배산(盃山: 경남 남동부), 백봉(白峰: 경기 미금 동쪽), 백설산(白雪山: 함흥시 북쪽), 백암산(白庵山: 금강산 서쪽), 백우산(白羽山: 강원 홍천 내촌면), 백적산(白積山: 강원 평창 진부), 백하산(.. 2006. 7. 14.
밝음과 박달재 - 2편 '밝' 계통의 산 이름들 (참조: 이 문장에서 옛글 모음자의 "아래아"를 표식하지 못하므로 그 부분을 적색으로 처리함) 그렇다면 이러한 인명, 지명 등에서 많이 쓰인 '밝'은 산이름에 어떻게 나타나 있을까? 우리나라의 산들 중 대개 명산이거나 큰 산들에 '백'(白)자나 '박'(朴)자가 들어간 것이 많은데, 이들의 대부분이 '밝'에서 연유했음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우선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白頭山:일명 太白山)을 비롯하여, 장백산(長白山), 소백산(小白山), 함백산(咸白山), 박달산(朴達山), 백산(白山), 북수백산(北水白山), 간백산(間白山), 동백산(東白山), 백사봉(白沙峰), 백운산(白雲山), 박산(朴山) 등 이 계통의 이름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밝'은 한자로 취음될 때 주로 '백'(白.. 2006. 7. 14.
밝음과 박달재 - 1편 동명(東明)은 '새밝'의 뜻 삼국지의 동이전(東夷傳)에 따르면, "고구려에서는 해마다 10월이면 마을 남녀들이 밤에 모여 노래와 놀이를 즐기며,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국중행사'(國中行事)를 벌였는데, 그 이름을 '동맹'(東盟)이라 한다"고 하였다. 또 후한서(後漢書)의 동이전에도 "10월에 제천의식을 갖는데, 밤에 남녀가 모여 창악(唱樂)을 하였고, 귀신/영성/사직에 제사하기를 즐겼는데, 그 이름을 '동맹'이라 하더라"고 하였다. 상고시대 부족들의 종교와 예술생활을 종합한 제정일치(祭政一致)의 한 본보기인 이 제천의식은 고려시대에 계승되어 팔관회(八關會)의 의식이 되었다. 동맹은 '동명'(東明) 이라고도 하는데, 모든 부족이 한 자리에 모여 나랏일을 의논하고, 그들의 시조인 주몽신(朱夢神), 즉 동명신.. 2006. 7. 14.
도드람산의 유례 도드람산의 유례 옛날 이 산 근처 마을에 병든 홀어머니를 극진히 섬기는 효자가 살고 있었다. 효자는 정성을 다해어머니를 간호했으나 어머니의 병환은 점점 위독해 갔다. 어느 날 스님 한 분이 시주를 청하러갔다가 효자로부터 자초지종을 듣고 도드람산에서만 자라는 석이버섯을 따서 어머니에게 드리면 병이 나을 것 이라고 했다. 효자는 석이버섯을 따기위해 도드람산으로 올라갔다. 밧줄에 몸을 묶고 깎아지른 절벽을 내려가 바위틈을 더듬으며 버섯을 따고 있는데, 어디선가 산돼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울줄 모르는 짐승이기에 이상하게 여긴 효자가 절벽을 올라가 보니 산돼지는 간곳이 없고, 효자의 몸을 매달았던 밧줄이 바위 모서리에 긁혀서 끊어져가고 있었다. 효자의 지극한 효심을 가상하게 여긴 신령님이 산돼지를 보내 효자의 .. 2006. 7. 11.
오대산(五臺山)의 지명 - 4편 오대산 근처의 땅이름들 양양군의 서면, 홍천군의 내면, 평창군의 진부면과 강릉의 연곡면에 걸친 오대산 일대에는 많은 마을, 고개, 바위 등이 있으나 잊기에 아까운 사라져가는 우리말 이름들만 몇 골라 소개하고자 한다. 1) 문지방 같아 '지방너미'(양양 서면 갈천리) 마을 입구에 뻗어내린 산줄기가 문지방처럼 생겼다해서 붙은 이름이다. 이 근처 '용숫골'(龍沼一 ;용소일)이란 마을 남쪽 산기슭에는 호랑이가 머리를 든 모양의 '호랑이 바위'가 있다. 2) 산과 논이 많아 '논엣골'(양양 서면 論化里 ;논화리) 산과 논이 많아 '논엣골' 또는 '노네골'이라 하는데, 이 근처에서 가재가 많다는 '가잿골'(가좌동)과 원집이 있었다는 '원댕이' 라는 마을이 있고, 올라보면 한계령을 바라볼 수 있다는 '망령재'라는 고.. 2006. 7. 7.
오대산(五臺山)의 지명 - 3편 오대산 근처의 내 1) 소나무가 많아 '솔내'(松川 ;송천, 連谷川 ;연곡리) 강릉 연곡면 삼산리의 동대산에서 시작되는 이 물줄기는 북동쪽으로 흘러 무릉동에 이르러 '솔내' (松川)라는 이름을 갖는데. 이 내는 동쪽으로 꺾여 연곡면 중앙부를 뚫고, 앞뚜루(南坪 ;남평)을 지난다. 이 내가 지나는 삼산리의 두두랭이 남서쪽에는 '솔내'라는 마을이 있는데, 이 곳에는 소나무가 많았다 한다. 2) 뒤쪽으로 흐른다해서 '뒷가래'(뒷강: 後川 ;후천, 後江 ;후강) 양양군 서면 약수산에서 시작하여 북으로 흘러 황이, 서림, 영덕, 공수사리를 거쳐 송천리에서, 서쪽에서 오는 송애내를 합하고, 위뜨르(上坪 ;상평)에서 꺾여 동쪽으로 흘러 남대천으로 들어간다. '뒷가래'란 이름은 그 흐르는 지경이 주로 남대천 뒤쪽이 된.. 2006. 7. 7.
오대산(五臺山)의 지명 - 2편 오대산 근처의 봉우리들 오대산 근처는 온통 뫼 봉우리들이 깔린 곳이어서 많은 봉우리 이름들이 있으나, 여기서는 원래 우리 말로 불리었던 산이나 봉우리 이름을 몇만 추려 소개한다. 1) 가마솥 같은 '가마배기'(雲溪峯 ;운계봉) 강릉 신왕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높이 531m인데, 모양이 가마솥을 엎어 놓은 것 같다해서 붙은 이름이다. 2) 둥근 봉우리의 '두롱봉'(두로봉,斗里峯 ;두리봉) 강릉 삼산리의 가마소 남서쪽에 있는 산인데, 오대산 줄기로 높이 1023m로 봉우리가 둥글다. 3) 할아비봉(祖峰 ;조봉)과 할미봉(老姑峯 ;노시봉) 할아비봉은 양양군 서면 서림리와 황이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높이 1183m이다. 이 할아비봉과 마주 보는 자리에 할미봉이 있다. 4) 칼처럼 생긴 '칼산'(劍山 ; 검산) .. 2006. 7. 7.
오대산(五臺山)의 지명 - 1편 태백의 뫼줄기에 올망졸망 솟아댄 저 봉우리들, 자연의 전시장인 양 높고 낮은 바위 뫼, 흙뫼들이 손잡고 줄을 서서 한반도의 동쪽 울타리를 만들었다. 풍악의 부루마루(비로봉)가 주위의 일만 이천 딸림봉들과 함께 가을을 맞으면 이 모습 저 모습 빗깔로 한껏 몸치장을 하는데, 설뫼(雪岳; 설악)가 지지 않을세라 붉고 노란 빛깔을 뿌리며, 역시 가을 내용을 풍기고, 이어서 그 빛깔, 그 내용이 오대와 태백의 한뫼들에 전해져 예맥의 가슬 잔치로 마무리한다. 남쪽은 오대산인데, 흙산이면서 천바위, 만구렁이 겹겹으로 막혀져있다. 가장 위에는 다섯 축대가 있어 경치가 훌륭하고 축대마다 암자 하나씩 있다. 그 중 한 곳에는 부처의 사리를 갈무리 하였다. 상당(上黨) 부원군 한무외(韓無畏)가 여기에서 선도(仙道)를 깨치고.. 2006. 7. 7.
지리산(智異山)의 지명 두루와 지리산 지리산에 얽힌 전설 지리산의 여신 마야고(麻耶姑)는 남신 반야(般若)를 사모하여 그리운 반야의 옷 한 벌을 고이 지어 만나서 전해줄 기회를 찿고 있었다. 그러나 그 기회가 잘 닿지 않아 마음을 태웠다. 달 밝은어느 날 밤, 마야고는 지리산 중턱에 않아 반야의 옷을 품에 안고 그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때 꿈에도 그리던 반야가 자기쪽으로 손짓하며 걸어오는 것이 아닌가. 마야고는 바람에 나부끼는 꽃잎의 물결 속으로 반야의 옷을 든 채 달려갔다. 그리고 정신없이 무엇을 잡을 듯이 허위적거렸는데, 이상하게도 잡히는 것이 없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그리운 반야는 보이지않고, 쇠별꽃들만 달빛 아래서 바람에 흐느적거릴 뿐이었다. 쇠별꽃의 흐느적거림을 반야가 걸어오는 것으로 착각한 것을 알게 된 .. 2006. 6. 28.
속리산(俗離山)의 지명 - 2편 속리산 동쪽 일대의 땅 이름들 1) 선돌(入石里)에서 윗신섬이(上五里)까지 이 길은 상주의 화북면을 종단으로 하는 산길 이다. 즉 서쪽의 속리산 기슭과 동쪽의 청화산, 도장산 바탈 사이의 냇줄기를 따라 뻗은 길인데, 장암리에서 서쪽 기슭을 파고들면 속리산 정상을 오를 수 있다. 먼저 입석리의 동네 이름부터 알아보자. '입석리'라는 이름은 '선돌'이라는 바위 이름에서 나왔다. 입석리 남쪽에는 바위 하나가 우뚝 서 있는데, 이 곳의 전설로는 옛날 어느 장사가 이돌을 걸망으로 메고 오다가 세워 놓았다는 것이어서, 이 곳의 마을 이름까지 '선돌' 또는 '선돌배기'가 된 것이다. 근처의 옥량폭포 서쪽 위에는 '보굴암'(寶窟庵)이라는 작은 절이 있는데, 단종의 충신인 김종서의 손자가 이 곳에서 피신하여 살다가, 뜻.. 2006. 6. 10.
속리산(俗離山)의 지명 - 1편 속리산의 지명 동햇가에 둑을 쌓으며 남으로 달리던 뫼줄기는 삼척 근방에서 갑자기 서편으로 큰 팔을 벌렸다. 벌린 팔이 조금씩 밑으로 쳐지면서 남서로 향한다. 이 팔은 한반도의 남부를 둘로 가르면서사잇가라(新羅)의 옛땅과 머리가라(百濟)의 옛 땅이 여기서 갈라졌었노라고 줄을 긋는다. 웃방과 아랫방 사이의 작은 벽인 양, 이 뫼 줄기는 한반도의 허리 안에서 아늑한 두 방을 만든다. 이 줄기는 불쑥불쑥 봉우리를 솟구고, 그 봉우리 사이에 길마꼴의 마루를 이루어 작은 길을 열어주면서 동서로 전라, 경상의 커다란 두 개의 삶터울을 만들었다. 태백산부터 시작되는 이 뫼 줄기는 먼저 소백산에 닿고, 그 남서쪽에 대재(竹嶺)를 열어주고나서는 문수봉과 주흘산으로 잇는다. 그 기슭에 이름도 유명한 새재(鳥嶺), 조금 그 .. 2006. 6. 9.
북한산(北漢山)의 지명 - 2편 북한산의 봉우리 이름 1.백운대(白雲臺) 일명 '백운봉'이라고도 하며, 북한산의 최고봉이다. 높이 836미터로 날씨가 맑은 날은 인천 앞바다의 섬이 보이는 정도이다. 아래 굴 속에 솟아 흐르는 약수물은 '백운수' 또는'만수'라 하였다. 2.인수봉(仁壽峰) 북한산의 제 2봉이지만 조선시대에는 이 봉우리를 일컬어 '인수제일봉'이라 했다. 백운봉 동쪽에 자리하여 대포알을 똑바로 세워놓은 것 같은 큰 바위 하나로 우뚝 솟은 이 봉우리는 산신과 산악 숭배가 풍수 도참 사상으로까지 발전한 조선시대에 와서는 북한산의 어느 봉우리보다 관심을 끌어 이름 자체도 '인수'(仁壽)인 것이다. 이 봉우리가 어린애를 업고 나가는 형국이라 하여, 풍수지리면에서 좋치 않다고 생각한 사람들은인왕산 서쪽의 길마재(鞍山)를 '무악'(母岳.. 2006. 6. 4.
북한산(北漢山)의 지명 - 1편 북한산의 원이름은 "부루칸모로" 옛 우리 조상들이 그렇게 불렀을 것으로 추정한다. 한반도의 심장, 이 땅 온누리에 쉬임없이 힘을 뿌리는 이 곳, 서울의 진산 북한산은 명실공히 이 나라의 首山이요, 中岳이라 할만하다.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 / 고국 산천을 떠나고자 하랴마는 / 시절이 하 수상하니 올동말동하여라 인조 때 청나라로 볼모로 끌려가며 읋은 척화신(斥和臣) 김상헌의 한맺힌 시조다. 피를 받고 뼈를 굵혀온 고국을 떠나면서 삼각산과 한강수를 불러 눈물로 작별인사를 하였다. 여기서의 삼각산은 바로 이 땅 모든 산의 일컬음이요, 한강수는 이 땅 모든 강의 부름이다 해도 좋을 것이다. 삼각산은 이조 오백여 년 동안 수도 한성과 함께 기복심한 근세 역사의 서울을 지켜보며 말없이 웃고 울어온 산이.. 2006. 6.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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