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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산과 미황사의 기억 ~ 1989년 3월11일 산행코스 : 미황사 ~ 사자봉 ~ 달마산 ~ 딱골재 ~ 송촌저수지 ~ 노송 동생과 둘이서 전날 하룻밤 묵었던 땅끝 갈두마을을 빠져나왔다. 버스를 갈아타야 하는 송지면 사거리에 작은 구멍가게가 있었는데 가게 주인인 할머니에게 미황사 가는 버스가 언제 오냐고 여쭈었더니 금새 올거라고 . . . 그런데 할머니가 말하는 '금새'라는 단어는 2시간이었다. 그 시간을 모퉁이에서 추위에 벌벌 떨었더니 머리에 뿔이 돋았다. 금새 온다던 버스를 타고, '금새'보다 훨씬 짧은 시간에 미황사에 도착, 대웅보전 뒤로는 쫙~ 펼쳐보이는 배경으로 달마산이 병풍처럼 쫙~ 늘어 서 있었다. 미황사는 두륜산 대흥사의 형님뻘 된다는 절인데 그 규모가 형님답지 않게 왜소하기만 했다. 단청칠이 없는 미황사의 대웅보전은.. 2008. 3. 4.
여기가 땅끝이던가 ~ 1989년 3월10일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갈두리 동생과 둘이서 두륜산 산행을 마치고, 땅끝마을로 이동했다. 한반도 최남단의 땅끝을 밟아본다는 진한 의미를 두고서 . . . 하룻밤 묵을 곳도 땅끝 갈두마을로 정했다. 가게를 겸했던 민박집 이름은 "최남단횟집" 숙소에 짐을 풀어놓고, 땅끝으로 이동 . . . 갈두마을 남쪽 끝을 돌아 사자봉 아래의 해변으로 아슬아슬한 오솔길이 나 있었다. 간혹 나타나는 절벽 끝에서 망망대해의 상쾌감을 즐겨가며, 이마에 땀방울이 맺힐즈음 땅끝에 닿았다. 땅끝에 닿고보니 땅끝이라고 특별난 것도 없었다. 여느 곳과 마찬가지로 그냥 바다와 산이 만나는 곳, 단지 한반도 육지의 최고 남쪽이라는 의미가 붙었을 뿐이다. 우리네 인생과 마찬가지로 흘러가는 세월 속의 어떤 날에 의미를 부.. 2008. 3. 3.
두륜산의 희미한 기억들~ 1989년 3월10일 교통편 : 서울~광주(야간 관광버스), 광주~해남(시외버스 2시간), 해남~ 두륜산(시내버스 20분) 산행코스 : 대흥사 ~ 오심재 ~ 노승봉 ~ 가련봉 ~ 두륜봉 ~ 구름다리 ~ 도솔봉 ~ 닭골재 동생과 둘이서 9일 밤12시 서울 출발, 이튿날 오전 7시를 조금 넘겨 해남에 도착했다. 워낙 먼 거리라 2일간 해남에 머물러 근처를 둘러보기로 했다. 해남읍에서 약간의 식량을 구입하고, 두륜산으로 이동, 두륜산은 도립공원으로 입장료를 받던 곳인데, 이른 시간이라 공짜로 매표소를 통과했다. 해탈문을 지나서 대흥사로 들어서자 사찰 경내에 경찰승합차와 형사인 듯한 사람들 여럿이 모여 있었다. 당시 조계종 비리 문제로 매스콤이 떠들석 할 때였는데, 이 사건 처리를 위해 관할 형사들이 파견나와 .. 2008. 2. 29.
그 시절이 그립다 ~ 북한산 원효봉에서(1989년) 등반은 주로 동생과 함께 했다. 아니면 가까운 동료들과 팀을 이루어서 다녔다. 전문산악회나 단체에 가입한 적은 없다. 소속 없는 활동이 정보 공유나 습득 면에서는 다소 불리한 점도 있다. 그러나 단체에 구애받지 않고, 언제나 부담없이 다닐 수 있는 것은 큰 장점이다. 그런 이유로 당시의 암벽꾼들 중에는 무소속으로 다니는 최고의 베테랑들이 꽤 있었다. 이런 꾼들을 "솔로"라 불렀다. 인수봉 아래에서 혼자 어슬렁거리고 있으면 또 다른 솔로를 만난다. 그러면 그자리에서 서로 자일파티가 되어 벽을 오르는 것이다. 물론 안면이 있는 사람들끼리 등반을 하는 것이다. 선등을 서로 교대해서 오르기 때문에 지체시간이 짧고, 등반속도도 매우 빨랐다. 그들의 유연한 등반 모습은 가히 환상적이다.. 2008. 2. 28.
인수봉 처음 올랐던 날... 인수봉 처음 올랐던 날 1982년 3월10일 동생과 둘이서 생전 처음 인수봉 정상을 오른 날이다. 백운대에서 건너다보기만 했던 곳. 언제나 열망으로만 채웠던 곳. 드디어 여기 이곳에 섰다. 내게 등반의 역사가 끝나는 날까지 오늘의 기억은 결코 지워지지 않으리라 ~ 1982년 백운대에서 촬영 근처를 지나면서 늘 바라보기만 했던 인수봉 ~ 그 곳을 오르기 위해 지난 한해 얼마나 많은 훈련과 연습으로 땀을 흘렸던가 ~ 불암산에서, 보현봉에서, 수리봉에서, 오봉에서, 꼭 인수를 올라보겠다는 일념으로 ~ 82년 2월 중순경 따뜻한 날에 불암산을 찿아 바위감각을 익히는 워밍업을 가졌다. 그리고나서 그동안 품어왔던 열망을 이룰 날을 3월1일로 결정했다. 온통 설레는 맘으로 그날이 다가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며 ~ 19.. 2008. 2. 27.
초보시절의 보현봉... 1981년~1982년 북한산 보현봉에서 동생과 나, 그리고 또 1명 보현봉의 출입이 허용되던 시절, 이곳을 줄기차게 드나들었다. 북한산 보현봉과 사자능선은 현재 휴식년제로 적용되어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가끔 멀리서 보현봉을 바라보게 되면 어설펐던 초보시절의 옛 추억이 되살아나곤 한다. 미군용 비너를 자기확보용으로 사용하고, 어깨걸이 확보와 현수하강을 배우던 시절이 아련하다.(1981년) 첫 피치를 끝낸 후 밴드에 머물러 다음 등반을 대기하고 있는 모습 골동품 두 번째 피치(1982년) 두 번째 피치 두 번째 피치를 끝내고, 테라스에 앉아 쉬고 있는 모습 그나마 겨우 남아있는 것들 . . . 옛날의 하켄과 볼트, 점핑셋트 2008. 2. 26.
월출산의 추억 1988년 2월7일 날씨 : -12℃ / 눈과 가스와 강풍동반 교통편 : 서울~광주(야간 관광버스), 광주~영암(시외버스 첫차 4시:30분), 영암~ 도갑사(택시) 산행코스 : 도갑사 ~ 미왕재 ~ 향로봉 ~ 구정봉 ~ 천황봉 ~ 장군봉 ~ 천황사 인원 : 3명 (마루금과 동생, 이경규) 새벽 눈발이 날리던 날, 택시로 도갑사에 도착했으나 깜깜, 사찰 구경은 포기, 렌턴을 켜고, 곧바로 산행을 진행했다. 서울에서 여기까지 오는 동안 아무 것도 먹지 못했다. 물이 겨우 흐르는 냇가가 나타나서 라면을 끓여먹고 오르자고 했더니 둘은 조금 더 올라가서 식사를 하쟎다. 그러고서는 월출산을 넘을 때까지 냇가가 다시 나타나지 않았으니 결국은 이것이 쫄쫄 굶는 산행의 원인이 되고 말았다. 온통 이름 모를 가시나무와 산.. 2008. 2. 26.
나의 스승은 ~ 1978년 중반쯤으로 기억된다. 부산 동래온천장 부근의 한 서점에 전문서적을 구입하기 위해 들렀다. 이리저리 구경하다가 맨 한쪽 귀퉁이에 "등산백과"라는 두꺼운 책이 처박혀 있는 것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1권이 남아 있었는데, 대접을 못받았던지 먼지가 뽀얗게 쌓인채로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당시 산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지라 손길이 자연히 그쪽으로 갔다. 책 속의 내용이 꽤 알차게 보여 구매를 결심하고, 4천원의 책값으로 그 책의 주인이 되었다. 서점 주인은 그 책을 산 사람이 나 혼자뿐, 처음으로 한 권을, 동시에 마지막으로 한 권을 판매한 것이라 했다. 여가가 생길 때면 "등산백과"를 펼쳤다. 심심할 때마다 친구가 되어주었고, 훗 날 등반을 시작해서는 "나의 스승"이 되었다. 그 외 산악잡지.. 2008. 2. 23.
악(岳)의 구렁텅이에 빠진 계기~ 바위를 접하게 된 계기가 있다. 1979년 포항 내연산을 산행하다가 폭포 옆 절벽으로 클라이머들이 오르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 중에는 여성클라이머도 끼어 있었다. 그 당찬 모습과 넘치는 자신감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손과 발을 써서 절벽을 한 칸씩 오르는 행위가 무척 신기했고, 예술같은 몸동작에 흠뻑 매료되었다. 그 광경을 목격하고서 어느 덧 마음 속에는 클라이밍의 욕망이 솟구치고 있었다. 그 때부터 산행을 하다가 바위라도 보게되면 자연히 눈길이 그리로 쏠렸고, 특별히 관심을 갖게 되었다. 전혀 다른 차원의 세계에 도전 해보고 싶다는 갈망으로 가슴 속 가득이 메워져 있었던 것이다. 언젠가는 해보고 싶다는 강렬함과 내적 깊이 동요하는 동경심이 늘 존재했던 것 . . . 인수봉 2008. 2. 23.
첫 바위를 불암산에서~ 1980년 11월 2일 날씨는 약간 쌀쌀하고, 청명 장소는 천보암 좌측길 3피치 등반 동생과 둘이서 부산에 살고 있을 때는 인근의 산을 찿아 손과 발을 약간씩 이용하는 흉내를 내기만 했다. 하지만 정상적인 안전장비를 갖추고, 바위를 시작한 것은 1980년 1월에 서울로 이사와서 불암산을 오른 것이 처음이다. 청계5가에서 자일과 암벽화, 안전벨트와 헬멧, 카라비너와 하켄, 슬링, 점핑셋트 등 암벽등반에 필요한 장비들을 거금을 들여서 한꺼번에 모두 구입하고, 그 해 겨울 가까운 시기에 불암산을 찿아 첫 바위로 머리를 올렸던 것이다. 천보암에서 제일 쉬운 코스를 대여섯 번 올랐다가 이내 겨울을 맞았고, 그 이듬해인 81년 봄부터는 불암산을 안방 드나들듯 셀 수도 없을 만큼 잦게 찿아다니며 본격적인 등반을 가졌.. 2008. 2. 22.
계룡산의 두 번째 산행... 1987년 1월4일 청명한 날씨 교통편 : 서울~공주(직행버스), 공주~계룡산(갑사행 버스) 인원 : 2명(마루금, 안재홍) 산행일기 계룡산엔 두 번째다. 첫 번째 산행 때는 무척 고생을 하였으나 두 번째 산행에서는 지리를 익힌 탓인지 꽤 수월하다. 금잔디고개에 올라서니 동서 양편으로 낮으막한 구릉들이다. 오직 계룡산만 한가운데 우뚝 솟은 것같다. 금잔디고개부터 남매탑까지는 얼음판이다. 쌀개봉을 돌아 루트화인딩이 시작되었다. 10m 하강, 능선으로 붙기 위해 급사면 지역을 오른다. 정면으로 햇볕을 받아 고드름에서는 계속 물방울이 뚝뚝 흐른다. 한참 오르니 능선길로 올랐다. 첫 번째 산행 땐 없던 전망대가 관음봉 정상에 설치되어 있다. 보기가 흉하다. 관음봉 정상 조금 지나서부터 천황봉 쪽으로 상고대가 햇.. 2008. 2. 21.
계룡산의 첫 산행... 1982년 1월5일 청명한 날씨 교통편 : 서울~공주(직행버스), 공주~계룡산(갑사행 버스) 산행코스 : 갑사~금잔디고개~남매탑~살개능선~관음봉~천왕봉~군사용 도로~능선~밀목재~학봉교 단독산행으로 천안까지 1번국도로 달리다가 천안을 벗어나면서 공주로 향하는 길은 비포장 도로였다. 이 길로 버스가 달리면 꽁무니에서는 연막탄을 터트린 것처럼 뿌연 흙먼지를 일으키는 것이다. 도로 주변의 가옥이나 나무, 풀, 밭작물에는 온통 흙먼지로 뒤덮여 모두 황토빛으로 단장을 했다. 그런 곳에서 생활 한다는 게 신기했고, 특히 빨래같은 것은 어떻게 처리하는지도 의문이었다. 한장뿐인 계룡산 사진 허접한 산행일지 2008. 2. 21.
치악산(강원 원주) 1980년 11월9일 청명한 날씨 교통편 : 서울~원주(열차), 원주역~구룡사(버스) 인원 8명 (마루금, 이JH, 김SM, 윤MS, 조KJ, 김MK, 유MK, 김NY) 코스: 구룡사~ 사다리병창 ~비로봉~ 계곡~ 구룡사 별다른 이슈는 없었던 것같다. 땀 열심히 흘리면서 지루하게 올랐다는 것, 사다리병창 구간에서 쇠줄잡고 내려서는 곳에 정체가 조금 있었다는 것, 정상에 잠시 머물렀다가 열차시간을 맞추기 위해 계곡으로 바쁘게 내려왔던 기억뿐 . . . 2008. 2. 21.
마이산(전북 진안) 1979년 8월4일 청명한 날씨 교통편 : 전주~진안(시외버스), 진안~마이산행(군내버스) 인원 : 사촌과 함께 3명(마루금, KM, KJ) 그 해 여름휴가는 전북 전주와 임실을 오가며 보냈다. 그중 하루를 할애해서 진안에 소재한 '마이산'을 다녀온 것이다. 전주에 큰집이 있었고, 백부님은 임실 소양이란 곳에서 과수원과 양계, 돼지사육을 했다. 10여명 정도의 농장관리인을 거느리고 운영했을 만큼 규모의 농장이었다. 마침 복숭아를 수확하는 시기라 잔일을 도왔는데, 주로 크기별로 나누는 작업이었다. 이 곳 복숭아는 '황도'라 불리는 품종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여기서 최초로 재배, 생산된 것이라 한다. 백부님께서 일제 때 와세다대를 졸업, 한국에 돌아와서 관청근무를 잠시 하다가 정리하고, 농장일에만 전념했다. 수.. 2008. 2. 19.
용문산(경기 양평) 1980년 10월2일 청명한 날씨 교통편 : 서울~용문사(관광버스 대절) 참가 : 37명 어렴풋이 더듬거려지는 기억들 ~ 6번 국도와 이별 후 굴다리를 넘었고, 보기만 해도 저절로 배가 불러오던 황금들판을 보았고, 용문사가 가까워지면서 육중한 산세의 압권에 빨려들던 기억 . . . 나이 잔뜩 먹은 은행나무가 꼿꼿이 서서 우리를 얌전하게 기다리고 있었고, 그 큰 은행나무를 안아보기도 하고, 올라 타보기도 하고, 만지작거리기도 했다. 용문사 옆 계류건너 산으로 올랐으나, 정상은 못 오르고, 계곡에서만 머물렀던 기억이 있고 . . 하산 때 주차장에 좌판 벌려놓고 '기강냉이'라는 엄지만한 관상용 옥수수를 팔던 할머니가 생각난다. 관광버스 안에서 오며가며, 마이크 붙잡고, 목청 두껍게 불러대던 유행가, 가사는 모.. 2008. 2. 16.
주왕산(경북 청송) 1978년 10월7일~8일 청명한 날씨 교통편 : 부산~대구(열차), 대구~청송(시외버스) 하루 민박으로 인원 12명 (마루금, 김CD, 손YW, 우SD, 반P, 권DI, 강SK, 안SW, 유HW, 이JH, 구EL, 김MS) 부산에서 대구까지 경부선 열차로 2시간, 대구에서 시외버스로 영천을 거쳐 청송까지 가는데 4시간, 차량 이동으로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대구시내를 벗어나면서는 모두 비포장 도로였다. 나는 평소 맨 뒷좌석을 좋아해서 거기에 자리잡고 앉았다. 그 덕에 버스가 한 번씩 덜컹거릴 때마다 머리를 천정에 쳐박는 벌을 톡톡히 받았다. 주왕산 입구에 오후 5시쯤 도착, 늦은 시간이었지만 달맞이고개까지만 산행 하기로, 당시에도 국립공원이었던 주왕산은 그 때가 처음, 바위로 된 산세와 계곡미에 흠뻑 .. 2008. 2. 16.
내연산 보경사(경북 포항) 1979년 11월9일~10일 날씨 청명 교통편 : 부산~포항(시외버스), 포항~보경사(시내버스), 내연산 계곡에서 1박 야영 일행 4명(안SW, 박JK, 옥SS, 마루금) 오늘 밤 내연산 십이폭에서 天上 선녀 만날 수 있을까 설레는 가슴 안고 전설 속 나무꾼이나 되어보세 혹시라도 연분 이룰 자리가 여길까 저길까 선녀탕 근처 텐트나 멋지게 쳐 보세 계곡에서 놀던 해야. 어둠 깔고, 벌써 누워 잠드느냐 내연산 미녀폭 코 고는 소리만 요란한데 저녁 뱃속 채우니 속세 떠난 산중에 딱히 할 일 없더라. 이 긴긴밤을 어찌 그냥 보낼까마는.... 에헤라 술잔이나 돌려라 밤을 안주 삼아 실컷 취해나 보자. 마셔라 실컷 마셔라. 건배 건배 건배 ~ 캬 ~ 거듭되는 건배에 내연산 십이폭도 덩달아 취해 있더라 가득 채운 술.. 2008. 2. 14.
진악산(충남 금산) 1978년 2월7일(구정) 청명한 날씨 동생과 외사촌들과 넷이 외할아버지 산소에 들렀다가 성묘를 마치고, 올랐던 진악산이다. 외갓집이 매곡리 '매실'이란 마을에 있었고, 작은 고개 하나만 넘으면 나오는 석동리 보석사, 근처에 석동국민학교가 있었던 기억이 있다. 부모님은 금산 출신, 나는 부산 출신, 줄곧 부산에서만 살았기에 어르신들 고향인 금산 지리가 내게는 까막눈이었다. 그래서 그 곳 지리도 알 겸, 그 해 구정 때는 일부러 금산 외갓집에서 지내기로 했던 것이다. 십년이 지나면 강산도 변한다는 옛말이 있는데 헤어진지 삼십년이 지난 보석사 지금 어찌 변했을까 . . . 단청칠 없이 나무 빛깔 자체로만으로 좋아 보이던 처마자락 화장기 없이 수수한 모습이던 건축물이 있었는데 여전히 그대로 일까 . . . 천.. 2008. 2. 13.
고헌산(경남 언양) 1978년 8월15일(광복절) 비 내리던 날 동생과 둘이서 고헌산 남쪽 급경사로 올랐다. 계곡 중턱에서 소똥처럼 보이는 짐승 배설물 발견, 폭포 옆 절벽을 세미클라이밍으로 오르다가 뱀과 키스할 뻔, 정상 근처 억새밭엔 코스모스 피었고 . . . 산행의 목적은 굶는 연습. 당시 조난사고가 가끔 발생, 혹시 내게도 닥칠지 모를 상황에 대비, 생존훈련을 한 것이다. 수통에 물 1리터뿐, 그 외 다른 식량 없었다. 정상에서 이미 식수는 바닥, 아무 것도 섭취하지 못한 상태로 하산했다. 목 타고, 배 고파서 허기로 기운이 빠지니 하늘마저 노랬다. 하산길이 왜 그리 길던지 끝이 없는 것처럼 느꼈다. 어둠이 깔릴 때쯤 마을에 도착. 위기를 탈출했다는 안도감, 훈련을 이겼다는 만족감으로 마음이 뿌듯. 시골 구멍가게에 .. 2008. 2. 12.
1983년 4월3일..... 1983년 4월3일...내게는 잊을 수 없는 날이다. 북한산 인수봉에서 대조난사고가 있었다. 7명이 사망하고 13명이 조난에서 구조되는 산악사고였다. 벼랑에 매달린 채 매정한 날씨와 사투를 벌이다 끝내 숨져간 7명의 악우들... 미처 젊음의 꽃도 다 피우지도 못하고, 그 고귀한 넋을 인수봉에 바쳐야 하는 안타까움이 있었다. 바로 그날, 나 역시 일행들과 함께 인수봉을 올랐었다. 자칫 조난으로 이어졌을뻔도 했지만, 운이 좋았던지 그날의 사고에서 벗어났다. 그런 연유가 있어 매년 이맘 때면 으례히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숙연한 마음을 갖는다. 세월이 꽤 흘렀다지만 여전히 그때의 생생함은 머릿속에 그대로 남아있다. 우리 일행은 겨우내 둔해졌던 바위의 감각을 되찿기 위해 그 해 2월부터 틈만 나면 불암산에서 .. 2007. 4.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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