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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련한 추억 속으로 사라진 북한산의 산장들 ~ 1983년 4월에 북한산과 도봉산 일대 78.5㎢가 북한산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이후 2001년 10월에 환경부에서 고시한 2003년까지 전국 국립공원 내 대피소 12곳을 단계적으로 철거하겠다는 계획이 세워졌고, 그 일환으로 북한산 국립공원 내에 있던 산꾼들의 숱한 애환이 담긴 4곳의 산장들이 하나 둘씩 세월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 것이다. 그나마 현재까지 남아서 명맥을 유지해오던 백운산장마저도 곧 존폐위기에 처해있는 상황이다. 북한산장, 인수산장, 우이산장은 이미 추억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돌집으로 지어진 산장은 목적에 따라서 A형 B형 C형으로 등급을 두었는데, A형은 30평으로 전화와 관리인을 두었고, B형은 17평으로 악천후를 피하는 무인산장으로, C형은 B형보다 규모가 작은 무인산장이다. 그.. 2017. 11. 16.
도봉산 낭만길에서 ~ 2012. 12. 27.
내가 사용했던 막영장구들 ~ 내가 사용했던 막영장구들이다. 최신 것에 비하면 너무 보잘 것 없는 물건들이지만 여기에는 내 아련한 추억이 담겨 있고, 내 젊은 시절의 손자국이 묻어있다. 사진을 찍어두지 못해 기록을 남기지 못한 물건들도 있지만, 이마저 남은 것만도 다행으로 여긴다. 1970년대, A형 & 가옥형 텐트 ~ 돔형 텐트는 2동을 사용했다. 작은 것은 2인용으로, 큰 것은 4~5인용으로 준비했다. 혼자 야영 들 때는 작은 것을 사용했고, 사람 수에 따라서 큰 것 하나만 아니면 2동을 모두 사용하기도 했다. 가족 단위로 움직이면 큰 텐트가 좋겠지만 가끔 혼자 다닐 때도 있어 일부러 2동을 구입했다. 텐트 2동을 사용했을 때의 단점으로는 텐트를 설치하는 시간이 배로 든다는 것이다, 대신 넓은 터가 필요치 않아서 야영지 선택에는 .. 2010. 7. 1.
가족과 함께 등반했던 시간들 ~ 내 사랑의 날들아 지은이 : 영숙 내 사랑의 날들아 내 가슴에 남아 / 떠나가지 마라 잊혀지지도 벗겨지지도 / 씻겨 내려가지도 마라 (1985년) 송도 청량산에서 ~ 너를 내 가슴에 새겨두고 녹슬지 않도록 닦고 닦아 / 찬란한 빛을 내고 싶다 우리 사랑의 깊이만큼 / 내 몸 깊숙한 속살까지 / 내 몸 골격 뼈까지 / 아파도 좋다 (1985년)집에서 ~ 간이 저리도록 그리운 것이 있어야 / 사랑하는 맛이 난다 발이 부르트도록 기다림이 있어야 / 살아가는 맛이 난다 되새겨보아도 좋을 것이 있어야 / 여운이 있다 (1989년)불암산에서 ~ 나는 그대 사랑으로만 살아가고 싶다 내 사랑을 남기고 싶다 내피를 물감처럼 풀어 / 내 사랑을 그리고 싶다 (1988년)불암산에서 ~ 우리가 저지른 사랑은 / 때로는 슬퍼도.. 2010. 6. 10.
내가 입었던 등산복(1990년대 초반) 1991년 ~ 클라이밍 바지를 처음으로 구입했다. 등산장비점에서도 본격적으로 클라이밍복을 취급해서 판매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때 구입한 클라이밍 바지는 츄리닝복 스타일이다. 1980년대 중반, 동생과 내가 싸이클복을 개조해서 입고 다녔던 복장과 같은 모양이다. 따라서 당시 동생과 내가 함께 입고 다녔던 노란색 옷이 결국은 클라이밍 바지의 모태가 되었고, 실질적 원조격인 셈이다. 츄리닝 스타일의 클라이밍 바지가 판매되기 직전까지는 타이즈가 대세를 이루었다. 그러다가 츄리닝 스타일의 클라이밍복이 신개념으로 등장하면서 클라이밍용 타이즈는 점차 쇠퇴기를 맞았다. 신체가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타이즈는 등반 외에 입고 다니기에는 곤란했지만 츄리닝 스타일의 클라이밍 바지는 그런 점이 해소되었다. 국내 첫 출시되었던 .. 2010. 6. 9.
내가 입었던 등산복(1980년대 중후반) 1986년 ~ 노란색 싸이클복을 구입했다. 개조해서 클라이밍복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다. 당시 클라이밍복이라는 게 따로 없었다. 등산장비점에서 '클라이밍복'이란 명목으로 판매하는 옷 자체가 아예 없었다. 그래서 일부 클라이머들은 그 나름대로 옷을 개조하거나 직접 제작해서 클라이밍복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오봉에서(1987년) ~◈ 싸이클복을 '클라이밍복'으로 선택하게 된 이유는 이렇다. ◈ 신축성이 좋다는 점 . . . 무릎 구부림이 자연스러워 등반 시 복장에 의한 불편이 거의 없었다. ◈ 경제적이라는 것. . . . 가격이 저렴해서 옷이 헤지더라도 교체하는데 별 부담이 없었다. 천이 질겨서 예상보다는 오래 입을 수 있었다. ◈ 몸매를 살릴 수 있었다는 점 . . . 일반 등산복에 비해 몸에 잘 달라붙어서 날.. 2010. 6. 9.
내가 입었던 등산복(1980년대 중후반) 1985년에 우모복을 구입했다. 그전에 입던 것은 방수가 되지않아서 불편했고, 새로 구입한 것은 방수투습재의 하이포라 원단에 보온재는 덕다운으로, 구입가격은 장비점에서 특가로 56,000원, 당시 백화점 판매가격이 15만~20만원선이었다. 이 우모복을 입고서 산행을 한 적은 딱 한 번뿐이다. 그마저도 산행내내 입었던 것이 아니라 일시적으로 입어본 것이다. 동계시즌 야영이나 야간산행이 아니면 굳이 이런 우모복까지 갖출 필요는 없다. 이 우모복으로 산행보다는 대부분 일상복으로 입고 다녔다. 혹한기에 발생할지 모를 악천후 대비로 가끔 준비해서 다닌 적은 있었다. 우모복의 특징이라면 단연 보온성이 뛰어난 점, 또한 그 부피에 비해 가볍다는 것이다. 당시의 하이포라 원단은 코오롱에서 국내 최초로 개발한 신소재였다.. 2010. 6. 9.
내가 입었던 등산복(1980년대 중후반) 1985년경에 오버트라우져를 장만했다. 추위에 대비한 방수방풍 기능의 등산복이다. 나일론 소재로서 '써미트' 브랜드로 출시된 최초의 디자인이며, 장점으로는 부피가 적고 매우 질기며 탈착용이 신속하다는 것. 당시 가격은 25,000원. 청계5가의 동진레져(당시 쟈이안트)에서 구입.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탈색만 되었을뿐 아직도 닳지는 않았다. 많은 산행에 걸쳐서 오버트라우져의 혜택을 오랫동안 누렸다. 동계시즌에 사용한 것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하계시즌에도 상황에 따라 지참해서 다녔다. 겨울철 상의(上依) 복장으로 울셔츠에 울스웨트를 겹쳐 입으면 이것만으로 보온이 충분했다. 그러나 바람이 심하게 불어대면 이 복장만으로는 보온이 떨어져서 방풍 목적으로 오버트라우져를 덧입었다. 겨울철 하의(下依) 복장으로.. 2010. 6. 5.
내가 입었던 등산복(1980년대 중반) 반바지 차림에 스포츠양말과 운동화를 신고 등산용 수건을 말아서 머리띠로 둘렀다. 이것이 1980년대 중반의 대표적인 하계복장이었다. ++++++++++++++++++++++++++++++++++++++++++++++++++++++++++++ 당시 바위를 오르던 클라이머들의 모습이 이랬다. 워킹산행으로서는 이치에 어긋나지만, 바위꾼들만의 유행이었고 멋이었다. 그 시절 ... 주일이면 산으로 갔지만, 평일에는 아침마다 테니스장으로 갔다. 그렇게 7년간 테니스와 등반을 함께 병행했다. ++++++++++++++++++++++++++++++++++++++++++++++++++++++++++++ 어떤 날은 주일 아침에 테니스장으로 간적도 있다. 게임을 마치고나서 또 산으로 직행하면 테니스복이 곧 등산복이었으니, .. 2010. 5. 25.
내가 입었던 등산복(1980년대 초중반) 설악 흑범길에서(1983년) ~ 1982년에 니카바지를 또 장만했다. 먼저 장만했던 바지는 겨울용이라 여름철 등반용으로 부적합했다. 새로 장만한 니카바지는 모양도 더욱 세련되었고, 활동성이 좋은데다가 색상까지 마음에 들었다. 당시 위킹을 위주로 하던 산꾼들은 니카바지를 입고 산행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굳이 니카바지를 입지 않고서도 걷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일반 장비점에서 그런 복장을 팔지 않았던 탓도 있었다. 그러나 바윗꾼들은 달랐다. 암벽등반 때 대부분 츄리닝이나 니카바지 차림으로 바위를 올랐다. 등반 특성상 무릎구부림이 원활해야 하기 때문에 자연히 그런 복장을 선호하게 되었던 것이다. 니카바지는 활동이 편하다는 잇점도 있지만, 그 자체가 등산복 패션이라 워킹으로 이동할 때도 옷을 .. 2010. 5. 19.
내가 입었던 등산복(1980년대 초반) 1981년에 겨울용으로 니카바지와 우모복을 장만했다. 니카바지는 울(양털)로 짠 천인데, 보온성이 매우 탁월했으며, 당시의 동계용 의복으로서는 그만한 게 없었다. 단지 흠이라면 가격이 비싸고, 천이 좀 두꺼워서 뻑뻑한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상의 복장으로는 셔츠 위에다가 울스웨터를 덧입었다. 더 추울 때는 겉옷으로 우모복을 입었고, 등반 중에 땀이 베어나면 겉옷을 벗었다. 우모복은 보온 재료가 오리털인데 당시 겉옷감이 방수가 되지 않아서 오리털이 심심찮게 밖으로 삐져나왔다. 니카바지를 그 때 처음으로 입었는데 느낌이 그런대로 괜찮았다. 일반 바지와 달리 무릎부분에 찍찍이가 있어 바지자락 폭을 조절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었다. 무릎을 많이 구부리는 행동을 취할 때는 찍찍이로 바지자락 폭을 늘려서 활동이 편.. 2010. 5. 19.
내가 입었던 등산복(1980년대 초반) 1980년대 초 (밀양 백운산) 1980년대 초에는 바위꾼들을 위한 클라이밍복이란 게 따로 없었다. 그저 워킹할 때의 옷차림을 그대로 입고서 바위를 올랐다. 워킹용 바지에다 적당한 티셔츠 하나만 걸치고서 .... 1980년대 초 (불암산) 암벽등반이라는 것이 생명을 담보로 해서 바위를 오르는 행위라 아주 작은 부분에서도 민감해진다. 따라서 등산복장도 등반행위에 있어서 예외가 될 수가 없는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다. 특히 무릎이 잘 구부러져야하는데 당시의 복장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청바지보다는 골덴바지가 더 부드러워서 무릎을 구부리기에 더 유리했다. 그러나 골덴바지도 무릎을 구부리는 행위는 여전히 불편했다. 촌스럽지만 당시에는 최상의 등산복장이었다. 1980년대 초 (불암산) 저 시절에 경주용 자전거를 마.. 2010. 5.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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