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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공유/뫼이름들~

직지(直指)와 황악산(黃岳山)....2편

by 마루금 2007. 5. 5.

 

 

 

 

황악산의 정기를 이어받은 인물들...

황악산의 정기를 이어받아 이 지역에서 많은 인물이 배출되었다. 금릉군(金陵郡) 출신의 인물울 살펴본다.

 

이약동(李約東)은 금릉군 양촌 출생으로 조선 성종 때의 문신이다. 자는 춘포(春浦), 호는 노촌(老村)으로 1441년 진사에 합격하고, 1451년 문과에 급제, 1470년 제주목사에 발탁되었고, 1477년에는 천추사(千秋使)로 명(明)나라에 다녀왔다. 그는 경제에 밝았고, 김종직(金宗直)과 친분이 두터웠다. 금산(錦山)의 경렴 춘원(春院)에 재향, 시호는 평정공(平靖公)이다.

 

허종(許琮)은 성종 때의 문신으로 1434년 금릉군 조마면 장암동 출생이다. 1457년 문과에 급제하여 의영당(義盈唐) 직장 선전관 등을 지내고, 1462년 정언지평(正言持平)을 역임, 1465년 함경도절제사가 되었다. 그는 1481년 호조판서를 거쳐 우찬성, 이조판서를 지냈고, 양천부원군에 진봉된 인물이다. 성종 때 청백사에 녹선되었고, 시호는 충정공(忠貞公)이다.

 

허침(許琛)은 허종의 아우로 1475년 문과에 급제하여 감찰, 부교리특평등, 1492년 경상도관찰사, 대사헌을 거쳐 1502년 우의정, 좌의정에 올랐다. 그는 청백사에 녹선되었고, 시호는 문정공(文貞公)이다. 

 

이 밖에도 금릉출신의 인물로는 성종5년 시제에서 장원하여 문명(文名)을 펼쳤으며, 도승지, 호조참판, 충북도관찰사를 역임한 조위(曺偉), 문종 때 공조판서를 지낸 감천면 출신의 문혜공 최선문, 성종 때의 무신으로 공조참판, 충청도 수군절도사, 총관을 역임한 조마면 출신의 배흥위, 31세에 문과에 급제한 후 임란을 맞아 1597년 홍의장군 곽재우와 더불어 화왕산성에서 항전한 바 있는 감호 여대로, 서거정과 더불어 동국통감을 편찬한 이숙성, 민영환이 '고심혈성(孤心血誠)은 가히 우리라 조양지오(朝洋之嗚)'이라 칭송했던 구성면 금평출신의 한말 우국지사 여중용(呂中龍),

 

3.1운동 때 경상도 만세시위를 주도하였으며  한국독립후원 의용단을 조직하여 재무총장직을 맡은 바있는 구성면 불원리 출신의 이명균, 김천고등보통학교를 설립한 바 있는 여류교육자 최송설당 등의 걸출한 인물들이 기라성을 이루었다. 이 고장 출신의 시인 정수봉은 아래의 노래로 금릉의 문화를 자랑했다.

 

직지내 감천물은 연연한 흐름 
옛 김산 높은 뜻을 이어가리니
금빛으로 빛나는 금릉이라네 . . .

 

 

황악산의 지질...

이 지역의 지질은 선(先)앰브리아기의 관입편마암(injection gneiss), 조립화강편마암(fine grained granite gneiss)와 중생대 백악기의 불국사지각 변동 때 관입한  흑운모화강암(biotite granite)으로구성되어 있다. 정상인 비로봉 일대는 전부 관입편마암으로, 우두령과 세막골 일대는 조립화강편마암으로, 황악산 북쪽의 제방령 일대는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이 지역의 지형은 암질의 차이로 인해 변성암이 분포된 곳은 험준한 고지대를, 화강암이 분포된 곳은 저지대를 이루는 장년기형을 나타내고 있다. 산악지대의 평균 표고는 해발 600m이며, 동북방향으로 완만한 경사가 되어 직지천을 발원케하여 주위의 평야지를 이룬다. 평야지의 평균 표고는 해발 180m이다.   

 

 

황악산의 임상특징...

황악산은 소나무가 없는 것이 임상의 가장 큰 특징이며, 떡갈나무, 참나무, 오리목, 칡, 다래나무 등이 빽빽한 수림을 이루어 나목이 된 겨울철은 마치 고슴도치 등판같은 인상을 준다. 따라서 이 산은 늦가을 낙엽이 가장 유명한 자랑거리이다. 그리고 겨울철 눈많고, 바람 심하기로도 유명한데, 이는 충청지방에서 불어오는 강한 바람이 소백산맥의 높은 산마루에 걸려 단열팽창을 일으키므로 눈과 비가 많다고 한다. 다른 산에서 눈구경 할 수 없을 눈 적은 겨울철에도 황악산은 꼭대기에 언제나 흰 눈을 쓰고 있다고 한다.

    

 

금의 샘이라는 김천(金泉)....     
고려사에 의하면 전국에 250여 방정제(邦政制)의 역이 있었는데 그 가운데에 부산, 문산, 추풍, 양천,
작내, 장곡, 금양 등 20역을 묶어서 한 도(道)로 하고, 찰방(察訪)이 관장케 했는데 그 도를 김천도(金泉道)라 했다고 한다.

 

김천이란 이름은 옛부터 이 곳에 샘이 있어 물이 좋아 그 샘을 금(金)의 샘(泉)이라 하였다하고, 김천물을 길어다가 술을 빗으면 그 맛이 그럴 수 없이 향기도 좋았다고 하여 그 샘을 주천(酒泉)이라했다 한다. 이 주천의 물로 빗은 김천과하주(金泉過夏酒)는 중국의 여산호춘산(驪山湖春山)의 그것과 비견할 만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명장 이여송이 이 곳을 지나며, 김천의 술맛을 보고, 중국의 금릉(金陵) 술맛과 같다고 칭송하여 이때부터 김천이 금릉으로 불리었다는 애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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